1960년대 초 한국 과학기술정책의 두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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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1960년대 초 한국 과학기술정책의 두 흐름

1960년대 초 한국의 경제개발 전략에서
기술정책의 채택
연세대학교 경제연구소 세미나
2012년 2월 22일
홍성주 (STEPI)
목차
1. 연구의 질문, 선행연구, 방법
2. 선행연구 검토와 본 연구의 방법
3. 前史: 1950년대 한국의 과학기술 상황
4. 1960년대 초 경제개발전략에서 기술정책의 채택
5. 결론 및 시사점
1. 연구의 질문, 관점, 주장
• 국가의 성장, 경제개발과 과학기술 발전의 관계에 대한 의문
질문
• 60년대 한국에서 ‘과학기술’이 중요해지는 대내외적 환경과 조건은? 당
대의 맥락에서 경제개발과 과학기술 사이에 관련은?
• 과학기술사, STS(과학기술학, 과학기술과 사회연구)의 흐름 중 비교과
선행
연구
학사 연구 (Solingen, 1993)
• 혁신체제 연구 흐름 중 국가혁신체제론(Lundvall, 1988, 2007)과 개도
국의 기술발전론(김인수, 1979; 이근·임채성, 2001)
본
연구
관점
• ‘국가’의 시선에서 60년대 한국 경제와 과학기술의 관계를 조망
• 경제-과학기술을 연결시키는 의제형성, 의사결정이 작동하는 구조, 주체에 대한 연구
• 특히, ‘개발국가’ 이전의 ‘원조의존 국가’의 시선으로 탐구
• ‘과학기술자 사회’의 형성 측면 – 집단적 담론(의식), 행동(국가에의 대
응), 정체성, 특성…
2. 선행연구 검토 1) STS, 비교과학사
과학기술 발전의 본질에 대한 문제제기
• 과학의 내적 발전론 : <과학혁명의 구조> (Kuhn, 1962)의 Paradigm Shift
• 과학기술과 사회? 이 중 비교과학사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한 국가의 과학기술
이 그 나라가 처한 국제적 환경과 국내적 구조에 영향을 받는다’는 관점 형성
국가  과학기술
• 국가는 과학기술활동의 주요 후원자이자, 연구영역을 제한하는 등의 관리자
• 과학기술자 상당수가 국가기관에 고용되고, 국가 R&D 사업에 참여할 기회를
가지며, 국가로부터 다양한 형태의 보상과 인정을 받음
• 자유주의 가치가 팽배한 국가에서 조차 과학기술만큼은 국가에 의존적!
국내외 변수가 과학기술에 미치는 영향
• 대외적 환경과 국내 정치경제 구조가 그 나라 과학기술의 규모와 특성에 영향
• 기초와 응용연구의 배분/분야 선택에 관여하는 정도
• 어느 곳(대학, 공공기관, 민간기관)을 국가의 성장엔진으로 삼을 것인가
• 과학기술자 고용 및 보상의 패턴과 인력 유동성…
참고) 각국의 정치경제구조를 이해하는 관점
정치경제 구조에 따른 국가 분류 (Lindblom, 1977)
정치체제
구분
경제
구조
Pluralist
다원주의/자유민주주의
Noncompetitive
비경쟁적 정치체제/독재, 권위주의, 군
사정부
Market-oriented
시장 지향형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한국(1993-)
브라질(-1985), 한국(-1993)
이집트/튀니지 등 아프리카 주요국
중국(1978-)
Centrally-planned
중앙 계획형
인도
이스라엘
북한, 소련(-1988), 중국(-1970s)
경제체제에 따른 국가 분류 (Chalmers Johnson, 1982)
Market-rational
Plan-rational
Centrally-planned
국가
미국, 시장경제
일본, 개발국가
구)소련, 사회주의
특징
국가는 규제정책 위주
민간부문은 시장에 의해 작동
의회의 정책결정기능 강함
국가가 특정 부문의 발전을
전략적으로 선정/지원
다만, 국가개입은 수단으로
서만 기능
생산수단 국유화
국가계획은 그 자체로 완결성
을 지니는 목표이자 귀결점
정치경제와 과학기술의 관계(Solingen, 1993에서 재작성)
국가
대외적 환경
국내 정치경제 구조
과학기술의 일반적 특징
미국
High security
High economic
Pluralist
Market-oriented
(market-rational)
국방 R&D 비중 큼
비국방 공공 R&D 활발(국가 개입은 비교적 작음)
민간 R&D 활발(연구의 상업화 빠름)
프랑스
한국(현)
High security
High economic
Pluralist
Market-oriented
(plan-rational)
국방 R&D 비중 큼
공공 R&D에 대한 국가의 개입 큰 편
민간 R&D도 활발
일본
Low security
High economic
Pluralist
Market-oriented
(plan-rational)
민간 R&D 비중이 큼
국가정책이 민간/공공 R&D에 미치는 영향 큼
구 소련
구 중국
High security
Low economic
Noncompetitive
Centrally-planned
국방 R&D 비중 큼
공공 R&D (연구 상업화 시차 큼)
브라질
(6-70s)
Low security
Low economic
Noncompetitive
Market-oriented
(plan-rational)
대부분 공공 R&D
민간 R&D 취약
산업과 공공연구기관의 연결고리 약함
한국
(6-80s)
중국(현)
High security
High economic
Noncompetitive
Market-oriented
(plan-rational)
국방 R&D 비중 큼
국가 주도의 공공 R&D
민간 R&D 증가 추세
하지만, 이러한 거시적 변수만 가지고는…
정태적 Taxonomy에 그침!, 그렇다면 Dynamism은 어디서 찾아야 하나?
2. 선행연구 검토 2) 혁신체제론
국가와 경제의 성장, 경쟁력의 원천은?
• NIS의 시각: “the Core + the Wider Setting”,
기업(산업)의 혁신활동은 그 기업(산업)을 둘
러싼 국가적 조건들, 즉 금융, 노동, 교육, 시장,
지재권, 법체계, 복지체계 등의 영향을 받는다
(Lundvall, 1988, 2007)  ‘Learning Economy’
Dynamism의 비밀 : 개발도상국 기술발전
• 김인수·이진주 모델: 기술도입 및 구현  도
입기술 소화 개선  기술창출
• M.E. Porter(1998, 2005)의 경제발전 단계 : 요
소주도형, 투자주도형, 혁신주도형
• 이근 모델 : ‘추격의 경제학’
그렇다면, 국가는?
당초의 질문이 풀리는가?
2-3) 본 연구의 관점과 대상
비어있는 연구 영역
• Lundvall이 ‘the Wider Setting’으로 구분한 국가, 사회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
• Solingen이 남겨놓은 국가적 조건에 따라 과학기술이 결정되는 양식과 그 변화
‘국가’의 시선
• 선행 연구들이 ‘국가혁신체제’를 어느 정도 갖춘 국가, 또는 개발 준비를 어느
정도 갖춘 ‘개발 국가’의 시선으로 보았다면,
• 본 연구는 개발 이전단계의 국가, 한국의 경우 ‘원조의존 국가’ 단계에서 시작
• 국가가 처한 상황과 조건에서 나타나는 특정 문제(경제-기술 문제)의 포착, 그
문제를 둘러싼 의제, 대안의 형성, 의사결정체계, 정책수단의 선택 등을 분석
사회적 수용성, 사회 역량
• 국가적 조건, 특정 의제와 의사결정에 ‘사회’가 반응, 대응, 참여하는 양식
• 특히, 국가의 기술정책 의사결정 과정에서, 동시에 과학기술자 사회에 형성되는
지배적 담론과 의식, 정체성, 사회적 지위 변화를 추적
3. 前史: 1950년대 한국의 과학기술 상황
국제적인 환경의 영향
• 냉전체제와 군사경쟁 심화, 분단국가로서 한국은 미소 군사경쟁의 영향 받음
• 국제전 성격의 6.25전쟁 발발
• 한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상당한 상황 (미 원조기구, 미군을 통해)
국내 정치경제 상황
• 이승만 정부는 국가재정을 미국의 원조에 전적으로 의존, 내정의 의사결정권
취약 (이승만을 두고, 외교에는 귀신, 내치에는 …)
• 전쟁과 전후 복구기간 주요 국정 관심사는 국방, 농림수산 분야
• 원조의존 경제 : 삼백산업 중심의 산업구조, 미약한 시장경제 작동
과학기술과 혁신
• 국공립 연구기관들(주로 농림계, 식민지 유산) & 국방부 과학연구소(‘50 설립)
• 과학기술계 대학 중심으로 고급 과학기술자 분포하나, 영세한 연구환경
• 과학기술 활동이 혁신으로 이어질 연계고리 취약
• 이 당시 스타 과학자? (
)
• NIS 관점에서 보자면, core와 setting 모두 취약한 원시적 단계, Unformed NIS
변화의 바람~
국제적 차원
• 냉전 지속
• 대미 의존도 여전
• 국제시장 경쟁력 취약
미국의 대한
무상원조감축
• 내자비축/외화확보
• 산업사회로의 전환 모색
• 정부의 강력한 자립 정책 추진 예고
국가 차원
• 과학기술은 대외의존도를 낮추고, 경제자
립 및 산업사회로의 이행을 이루는 수단
• 도구적 관념 강화
과학기술계
4. 60년대 초 경제개발전략에서 기술정책의 채택
1) 변화의 시작, ‘의제’의 부상
국제적인 환경
• 미국의 상호안전법 개정(‘57), 군사원조는 증여, 경제원조는 차관방식으로 분리
• 미국의 대외 무상원조 감축  미국의 대한(對韓) 경제원조 감축 예정
국내 정치경제
• 정치사회적 변화
•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 하야, 장면 민주당 정부 수립(다원주의 실험)
• 1961년 5.16으로 박정희 군사정부 등장(비경쟁적 정치체제로 환원)
• 국가적 문제의 부상 : 한국경제 및 국가재정의 원조의존도를 줄여야 하는 과업
 내자 비축, 외화 확보  뭔가를 만들어 팔아야 함  공업화!
• 이승만 정부 부흥부 산업개발위원회, 1960 “경제개발 3개년계획, 1960~1962” : 기존의
농림수산업 중심 정책에서, 그와 더불어 광업, 제조업, 건설업, 교통, 전력 등 공업 확대 구
상
• 2공화국 장면 내각, 1961 “경제개발 5개년계획” : 전략부문으로 전력, 석탄, 비료, 시멘트,
화학섬유, 정유, 철강, 농업 채택
국가적 의제의 명료화 : 농업사회에서 공업사회로의 이행!
 박정희 군사정부, 1961 “경제개발 5개년계획”
참고)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5개년계획
 공업화 전략
4. 2) 국가적 의제(공업화)에 대한 ‘사회’의 반응
‘과학기술계’의 형성
• 1959년 원자력연구소(원자력원) 설립 후, ‘원자력학술회’의 결성
• 원자력학술회의는 과학기술계 대학, 학회, 연구기관 + 경성전기 등 공업계 일부,
내무부 토목국 등 관료계를 대표하는 600여 과학기술자 모임 (핵심은 10여명)
• 그 외 공업기술계 인사들의 결집이 두드러짐 (한국 산업기술인 구락부)
• 이러한 그룹들은, 과학기술이 자립적 경제발전, 공업화의 주요 수단임을 강조
 도구적 과학기술 담론 강화
예) 1960 한국과학기술진흥협회 결성
• 원자력학술회의를 계승한 한국과학기술진흥협회 결성
• 대정부 “건의문” 제출
• 종합적인 원자력정책 수립 (실상은, 과학기술 진흥정책)
• 과학기술진흥법 제정
• 대학과 연구소에 대한 연구비 지원
예) 한국산업기술인 구락부
• 1960년 오원철, 박승엽, 주리회 등 산업기술인 중심으로 결성된 그룹 (10여 명)
• 당시 상공부와 연계되어 상공정책 수립에 영향
참고) 한국산업기술인 구락부(‘60-61)
4. 3) 대안과 의사결정구조의 형성(A) 재건회의-문교부-과학기술계 교수들
국가재건최고회의, “과학기술의 종합관리”안
• “과학기술의 종합관리” 주장: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수십억 불의 자재와 기술을
원조받으면서도 경제재건을 이루지 못한 까닭을 과학기술의 부족에서 찾음
• 과학기술 의제가 국정 논의의 하나로 진입
• 누가 주도? 문교사회위원회 위원장 홍종철 : 1950년 육사8기, 미 육군포병학교,
제9사단 포병대령, 5.16 이후 교육정책가, 문교부 장관
• 50년대 한국 사관학교 교육: 과학기술교육이 비교적 충실 (이학사 학위 취득)
‘과학기술원’ 체제 설계(’61)
• 홍종철 등 군인관료+ 권녕대 등 과학기술계 교수들
• 과학기술원 중심의 연구 및 행정체계 설계
• 과학기술원은 기초, 응용, 개발의 전 과정을 포괄한 연구소이자 중앙행정기구
• 기존의 국공립 연구기관은 산업발전을 위한 시험연구 기관으로 역할 분리
하지만, 경제기획원의 반대로 무산
• 과학기술과 경제, 국가 발전 사이에 상관성이 강하다고 인식하는 분위기는 조
성되었으나, 담론/의제 차원에서 그 관계의 명확성을 짚어내는 데는 한계
4. 4) 대안과 의사결정구조의 형성(B) 경제기구의 기술정책관료들
미국의 대한(對韓) 기술원조 정책에 문제제기
• 미국과의 기술협정 성격: SH&G가 한국의 경제, 산업 부문의 기술용역 총괄
• 사업계획작성부터, 기술타당성 검토, 설계, 시설품목선정, 공사 진척상황 점검,
시설관리유지에 필요한 기술훈련, 완공 후 시험가동까지...
• 한국인 관료들의 문제제기
• SH&G, “구성인원이 일류기술자가 아니었고, 단일회사가 산업 전 부문의 기술
조사를 수행한 관계로 신빙성있는 전문적인 것이 되지 못하였다.”
• 미국의 대한(對韓) 기술원조는 지나치게 “Buy American Policy”
• 미국으로부터의 기술이전 효과 미미하다!
•기술정책 관료들의 대안은,
- ‘연구소’가 아니라, 기술원
조 자금의 한국적 활용
- 하지만 미 원조당국의 반
대로 무산됨
- 그럼 다음은?
하지만, 미 원조당국은 한국의 상기 요청에 반대
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 추진 차질
4. 5) 경제개발을 위한 기술정책 및 그 추진체계의 형성
• 경제기획원은 1962년 제1차 기술진흥 5개년계획 수립
• 기술진흥계획에 따라 1962년 기술관리국 설치 (초대국장 전상근)
• 기술관리국을 중심으로 기술진흥5개년계획 추진 (부처간 종합조정 계획의 성격)
• 그 중 문교부가 고등, 중등 교육에서 과학기술교육 강화
이 계획의 성격
• 이 계획은, 의사결정구조
의 두 축을 이룬 집단들의
입장을 종합한 듯 보이나,
• 최고회의-문교부-과학기
술계 교수들 입장은 극히
일부 반영되는 수준
• 경제기구 기술정책 관료
들의 입장을 더 많이 반영
• 기술관리국 설치는 한국
에서 테크노크라시의 형
성을 의미
다만, 역할이 크지 않은 농림부, 상공부 등의 역할은 생략
4. 6) 경제개발을 위한 기술정책 선택 (A) “기술공” 양성
미 원조정책의 방향 전환 실패  국내 기술자원 활용
• 국내에서 활용가능한 기술자원은 기술인력뿐, 제1차 기술진흥5개년계획의 핵
심은?  ‘기술수급계획’ (=기술인력수급계획)
• 특히, 중간기술인력 ‘기술공’의 국가적 중요성 부상
4. 5) 경제개발을 위한 기술정책 선택 (B) “기술사” 제도
그럼에도, 외국기술(공장, 설비, 생산기술 등)을 들여오려면,
• 의무통과지점 존재: 미국 기술용역회사의 까다로운 ‘기술타당성’ 검토!
• 미국 기술자의 보수적이고 까다로운 심사로 한국정부의 기획이 번번이 무산
• Buy American Policy의 핵심
• 만약에, 한국 기술자들이 그 ‘기술타당성’ 검토를 대체한다면?
• 외화 절약 & 사업 수행 원활  ‘기술사법 제정’, 기술사 제도 성립
(4절) 요약
미국의 무상원조 감축이라는 대외적 변수
& 취약한 국내경제의 자립 강화라는 국가적 과업
경제자립 문제를 풀기 위한 과학기술의제, 대안들의 경합
 경제개발을 위한 제1차 기술진흥5개년계획 수립
외국기술 도입문제에 대한 해법
 미국에 대한 기술의존도를 줄일 전략, 기술사 제도 성립
과학기술인력의 국가자원화 , “국가의 일부가 된 과학기술”
과학기술자들의 정치세력화, ‘공복화’ 동시진행
그 다음은? 과학기술과 국가의 동맹 체제 만들기
한국 최초의 NIS 구축...
5. 결론 및 시사점
60년대 초 한국의 경제개발전략에서 기술정책은,
• 국제정세의 변화와 그에 조응하는 국가적 의제의 등장,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들간의
경합 속에서 만들어졌다.
• 과학기술자들을 1) 경제개발사업의 공장설립계획에 활용(기술공 정책), 2) 기술타당성
검토를 위한 기술용역단, 즉 두뇌(기술사)로 활용한다는 목적이 있었다.
• 미국에 대한 기술의존(경제의존)에서 벗어나는 출구전략이었다.
• 기술의존 뿐만 아니라, 미국으로부터 한국정부가 국책사업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돌파
구였다.
시사점1) 혁신체제론에서,
• The Wider Setting에서 일어나는 국가-사회-과학기술의 변동도 The Core의 혁신과정
만큼 중요하다. 가장 이상적인 연구는 양쪽의 변동이 연동하는 양상을 드러내는 것.
시사점2) STS에서,
• STS 연구들이 혁신체제론에 영향을 주었듯, 혁신체제론의 관점들을 도입하여 실제로
과학기술-사회 시스템이 변화하는 동학을 경험연구로 풍부하게 풀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