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가화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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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금본위제
염가화폐
대통령
선거
금본위제
폐지
히틀러
선택
나치 독일
값비싼전쟁과
값싼화폐
과 목 : 의사결정론
발표자 : 정 호 균
학 번 : 20042418
제 5장. 염가화폐의 ‘뉴딜정책’
금본위제
화폐 한 단위의 가치가 일정한 금 가치에
결부되어 있는 화폐제도,
이 경우 화폐가치는 금 가치에 의해 제약
되며 금 가치를 규정한다. 따라서 화폐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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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점
 과도한 지폐 발행으로 물가 상승을 일
으킬 수 있는 정부나 은행의 힘을 제한
 각국이 고정환율제도를 채택해 국제
무역에 명확성이 부여
단위와 금 일정량과의 등가관계가 어긋나
게 되면 금은 화폐로 또는 화폐는 금으로
단점
전환하게 되고 이 전환을 통해 화폐수량은
 화폐공급에 충분한 유연성을 보이지
증감한다. 이리하여 화폐의 가치는 일정량
못한다.
의 금의 가치에 접근되는데, 이 화폐 한 단
 어느 한 국가가 세계적인 경기침체나
위와 금 일정량과의 등가관계가 유지 가능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차단하고 자국 경
한 것은 화폐와 금과의 자유로운 상호전
제를 완전히 분리시켜 보호하는 것이 불
환, 즉 금화 주조의 자유와 은행권태환의
가능하다.
자유, 금수출입의 자유를 통해서만 보증된
 실업률이 증가하고 경제성장률이 감
다.
소하는 현상이 발생할 때마다 지불능력
이 없는 나라에서는 경기 조절 과정이
길고 고통스러워질 수 있다.
제 5장. 염가화폐의 ‘뉴딜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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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스의 변심
케인스는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갔을
때 이미 인플레이션이
국민과 사회에 미치는
거대한 잠재적 피해를
인식하고 <평화의
경제적 결과>라는 저서에 인플레이션의 실
제를 신랄하게 지적하였고, 독일의 1923년
초대형 인플레이션으로 그 주장이 검증된
상태였다.
그리스펀의 저서<황금과 경제의 자유>의 내용 중
-금본위제가 없는 상황에서는 어떤 방법으로도 국민의
재산이 인플레이션에 먹히는 것을 막지 못한다. 이는
곧 복지통계학자들이 금을 격렬히 반대하는 이유다.
적자재정은 간단히 말해 재산을 몰수하려는 음모다.
황금은 그들의 음모를 막아서 재산권 보호자 역할을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이러한 핵심을 파악한다면 금본위
제를 악의적으로 비방하는 이유를 쉽게 알 수 있을 것
이다. –
그런 의미에서 케인스와 그리스펀은 금본
위제의 옹호론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사상은 조금씩 변해갔다. 변
화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영국 케임브리
지 대학의 비밀조직 ‘사도회’활동이 그의
사상체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결국, 1936년에 출판된, <고용, 이자 및 화
폐의 일반이론>을 저서하면서 자신이 그
동안 옹호하던 ‘금본위제’를 버리고 ‘염가
화폐’를 옹호하였다.
제 5장. 염가화폐의 ‘뉴딜정책’
케임프리지의 사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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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스의 ‘염가화폐’
종교적 사명을 짊어진 엘리트의 핵심으로
평생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서방 사회의
통치계급 중에서 매우 견고한 배타적 이익
집단.
빅터와 자주 만나면서 국제 금융재벌이 추
구하는 방향이 염가화폐와 인플레이션이
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후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을 저서하여 국제 금
구성원: 트리니티칼리지와 킹스칼리지의
융재벌들과 정치가들의 전폭적 지지를 확
가장 우수한 12명
신하였다. 하지만 정작 피해를 볼 일반 대
중의 반응은 신경 쓰지 않았다.
빅터 로스차일드
대영제국의 화폐 발행권을 장악한 네이선
의 손자이며, 남작 칭호를 받은 3대 후계자
로 미국 JP모건은행에서 한동안 일하면서
월가를 익혔으며, 네덜란드 회사 쉘의 석
유 이사, 영국 대쳐 총리의 안전고문을 맡
았다.
제 5장. 염가화폐의 ‘뉴딜정책’
1932년의 대통령 선거
후버 대통령 Vs 은행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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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클린 루스벨트
루스벨트의 할아버지 제임스
루스벨트는 뉴욕은행의
1929년 모건이 계획한 ‘영플랜’으로 인해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금융위기가 찾아왔
고, 모건 사의 라몬트 사장은 미국 정부로
하여금 전쟁 채무 상환을 중지시켜달라는
요구를 했다. 그 조건으로 1932인 그해 대
통령 선거에 후버 대통령을 지지해 주겠다
는 조건으로 말이다. 하지만 결과론 적으로
후버 대통령은 월가의 요구를 거절했다. 더
나아가 증권 시장 조작 행위를 조사하여 월
가 금융재벌들을 자극 하였다.
창설자로서, 미국 최초의
은행 가문이었다. 외가인 델러노 가문 역시
혁혁한 세도가 집안으로, 역대 대통령 가운
데 아홉 명과 친척 관계였다. 루스벨트는
하버드를 졸업한 변호사 출신으로, 주요
고객에는 모건 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강
력한 은행 배경을 등에 업은 루스벨트는
라몬트의 도움으로 서른넷의 나이로 미국
해군부 차관보에 임명되었었고, 정계와 금
융계의 광범위한 인맥을 이용해 자신이 속
이후1932년 대통령
한 회사에 큰 이익을 창출했고, 1922년 연
선거에 프랭클린
합유럽투자회사의 총재에 취임했다. 이 회
루스벨트가 당선된다.
사는 독일의 각종 투기사업에 관여했다.(이
사와 고문엔, 빌헬름 쿠노와 맥스 와버그)
제 5장. 염가화폐의 ‘뉴딜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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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본위제의 폐지
뉴딜정책의 실상
뉴딜정책
연방준비은행에 동참하지 않은 은행을 제
3월 6일부터 은행들에 영업 중지 선포, 장
부에 대한 감사 시행 및 청문회, ‘글래스-스
티걸 법’, ‘1933년 증권법’, ‘1934년 증권거
래법’, 증권거래위원회(SEC) 설립
외한 월가의 금융가들에 의해 시장이 재편
성되었다.
SEC 위원장에 잭 모건 측 사람인 조셉 케
네디를 임명하였다.
“나라 전체가 루스벨트 대통령에 대한 숭배의 분
‘글래스-스티걸 법’의 본래의 취지는 모건
위기로 충만했다. 대통령에 취임한 지 불과 1주일
은행과 모건스탠리로 분리시키기 위한 법
만의 성과만도 대단하다. 우리는 이런 과정을 한
이였지만, 모건 사에 타격을 주지 못했고,
번도 겪어본 적이 없다.”
표면상으로는 분리 되어 있는 것 같지만
- 여론
실상은 여전히 잭 모건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 증거로 1935년 모건스탠리는 창업 첫
해부터 10억 달러 채권의 대리 판매 업무
를 전개 25%의 시장점유율을 석권했고,
사실상 각 회사의 채권 발행은 여전히 모
건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진행되고 있었다.
제 5장. 염가화폐의 ‘뉴딜정책’
금본위제 폐지
사람들의 이목이 온통 모건의 청문회에 집
중해 있는 동안 금본위제를 폐지할 중요한
법을 통과 시키고, 3월 11일 경제 안정을
내세워 은행의 황금 교환을 금지하는 행정
명령을 발표했다. 곧 4월 5일, 미국인은 소
유한 황금을 모두 내놓으라는 명령을 받았
다. 정부는 온스당 20.67달러로 이를 수매
한뒤, 약간의 금화를 제외한 금을 소장한
사람에게 10년 징역에 25만 달러 벌금을
부여 하였다. 이 법은 1974년에 가서야 폐
지되었다.
1934년 1월 , 황금 준비금 법안을 통과 시
켜 금 가격을 온스당 35달러로 고정. 1929
년 증시 대폭락 전에 내막을 알고 증시의
자금을 황금으로 바꾼 다음 런던으로 운반
했다. 그 후 온스당 35달러에 팔아
69.33%의 차액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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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로서의 금의 지위 배제과정
미국 국내에서 유통 및 교환되는
금화를 폐지
세계적으로 황금 화폐 기능 무효화
(브레턴우즈협정, IMF와 IBRD의 설립)
하워드 버핏의 지적
“나는 여러분에게 경고합니다. 두 당의 정치가들
은 모두 금본위제의 부활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곳과 해외에서 미국의 지속적인 달러화 하락으
로 큰돈을 번 사람들도 이 제도의 부활을 반대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혜와 기민함으로 이들의 반
대에 대처해야 합니다.”
제 5장. 염가화폐의 ‘뉴딜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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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투자:히틀러를 선택하다.
<시드니 와버그>
히틀러를 선택하다.
-시드니 와버그 저자
<시드니 와버그> 책 내용에 따르면, 1929
1933년 11월 24일, 뉴욕 타임즈는 한 권
년을 전후해 월가는 도스안과 영플랜으로
의 책을 소개 했다. 1933년 네덜란드에서
독일의 전쟁 배상금 지급 의무 완화해주었
출판되었지만, 서점에 진열된 지 불과 며
다.1924~1931년 월가는 두 계획으로
칠 만에 금서로 지정된다.
1,380억 마르크의 대출을 제공하고, 독일
저자 시드니 와버그는 미국 최대의 은행가
은 860억 마르크의 전쟁 배상금 지급. 또
집안인 와버그 가 출신으로 미국과 영국의
한 사실상 미국에서 거액의 금융자금을 지
금융가들이 히틀러의 권력 장악을 위해 자
원받아 군대 재정비.
금을 지원하는 비사를 폭로하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의 독일 배상금 문제
에 대해 고압 정책을 씀. 그러게 월가의 돈
이 프랑스 정부로 유입되는 것을 못마땅하
게 여김. 프랑스의 압박에 독일을 ‘해방’시
키기 위한 수단으로 히틀러를 선택.
제 5장. 염가화폐의 ‘뉴딜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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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와 월가의 은행가들의 만남
히틀러의 선택한 그 시점에서 월가의 은행
가들은 시드니 와버그가 히틀러와의 개인
적 접촉을 명령.
첫 접촉의 임무는 “공격적인 외교 정책으
로 프랑스의 보복 감정을 선동하라”였다.
이에 히틀러는 1억 마르크의 거액을 요구
하였고, 은행가들은 1,000만 달러로 흥정
을 마쳤다.
월가의 은행가들과의 계약으로 그 동안 히
틀러에 관심을 보이지 않던 뉴욕 타임즈가
정기적으로 히틀러의 연설과 나치 학설을
소개하는가 하며, 하버드대학도 독일의 국
가사회주의운동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두 번째 제안은 히틀러 쪽에서 먼저 나왔
다. “폭력으로 정권을 탈취하려면 5억 마르
크, 합법적으로 집권하려면 2억 마르크를
달라”
이에 월가의 은행가들은 히틀러에게 1,500
만 달러를 제공해 합법적 집권을 지원하였
다.
3차 회담은 1933년 2월 27일, 독일 국회
의사당 방화 사건이 있던 날 이루어 졌다.
“최소한 1억마르크가 더 있어야 최후의 정
권 탈취 행동을 완수할 수 있다”라고 주장
했다. 이에 월가는 최대 700만 달러만 더
주겠다고 답변했다.
제 5장. 염가화폐의 ‘뉴딜정책’
나치 독일
시대적 배경
당시 세계 최강국이던
미국은 여전히 1929년
대공황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었고, 거액의 전쟁 배당금 지급이라는
거대한 경제적 압박과 슈퍼인플레이션 가
운데 월가의 자금 지원을 받은 독일은 놀라
운 속도로 경제적 압박을 이겨냄과 동시에
유럽 최강의 무기 장비를 배치하였다. 이것
은 월가의 자금 지원이 없었다면 이루어
낼 수 없었고 ‘도스안’과 ‘영플랜’ 이 두 계
획 모두 독일의 전쟁 준비를 위한 목적으로
기획한 것이다.
맥패든 의원의 비난
“월가의 금융재벌들과 미연방준비은행이
미국 납세자의 돈을 독일의 전쟁무기 자금
으로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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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금융 제도 개혁
나치 독일의 성장과정에서 월가가 거액의
금융 지원을 해준 것 외에도 히틀러는 금
융 제도 개혁을 함으로서 가능했다. 그 중
독일 사유의 중앙은행 손에 화폐 발행권이
들어갔다는 것이다. 국채를 담보로 해야만
화폐를 발행할 수 있던 저효율 고비용 구조
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1933년 당시 30%
였던 실업률이 1938년에는 오히려 노동력
부족현상이 발생 하였다.
뜻하지 않은 근시안적 행위
수소첨가석유 기술 전수, 디트로이트 파견
(모듈 생산 기술, 생산 라인 작업), 중요 군사시
설 견학 등, 월가의 산하 기업들로(GM,포
드,GE,듀폰 등) 하여금 독일 군사공업 생산
시스템과 긴밀한 합작 관계 유지.
제 5장. 염가화폐의 ‘뉴딜정책’
값비싼 전쟁과 값싼 화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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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된 전쟁의 시작
미국의 반전 여론
월가 은행재벌에게 당하고 빈털터리가 된
미국인들은 제 1차 세계 대전과 1929년
대공황을 겪고 나자 더는 쉽게 속지 않았
고, 자식들을 은행재벌의 총알받이로 유럽
의 전쟁터에 보내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1935년 미국이 제 1차 세계대전에 참가한
과정의 비밀이 발표되고, 수많은 은행가와
군수회사가 참전 과정에서 저지른 음모와
불법 행위가 낱낱이 폭로되었다. 거기에
1929년 주가 폭락 때 저지른 추문이 밝혀
지는 바람에 국민의 반전 정서는 어느 때
보다 높았다. 때마침 나온 <전쟁으로 가는
길>이라는 베스트 셀러는 참전에 대한 대
중의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미국의 반전 여론이
높아 은행가들은
전쟁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
다. 전쟁의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 은행가
들은 때를 기다렸다. 그러던 중 일본이 진
주만 습격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일본이 진주만을 습격할 수 있도록 진주만
을 제외한 다른 부대에만 암호해독기를 보
내고 진주만에는 보내지 않았다. 그렇게 일
본의 진주만 습격은 성공하게 되고 일본의
갑작스러운 습격으로 미국내의 반전 여론
이 약화되면서 세계대전에 다시 한번 참전
하게 된다.
전쟁의 결과
160억 달러의 미국 국채가 2,690억 달러
까지 올랐다. 이로서 케인스의 적자재정과
염가화폐 주장이 마침내 ‘검증’을 받음 셈
이다. 이로 인해 은행가들은 막대한 이득을
챙겼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