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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강 당시(Ⅰ)
허희정 정현주 주혜진
제11강 당시(Ⅰ)
1. 초당시
- 유미주의 계승, 시의 형식과 시작 기교를 발전시킴.
- 시의 형식미, 아름다운 표현 및 성률의 해화(諧和)추구.
시의 격률(格律)이룩함, 근체시(近體詩)완성
- 궁정시인
- 초당사걸, 문장사우
율시와 절구의 격률 완성
- 심전기 송지문
근체시의 격률 완성
- 진자앙
유미주의 풍조 반대
제11강 당시(Ⅰ)
궁정시단
-상관의(上官義), 심전기(沈佺期), 송지문(宋之問)
-현란한 수사기교, 정교한 음성적 규칙을 시에 도입
-궁정의 연회나 유람을 위한 시
궁정시
-상관의 : 아름답고 화려한 형식의 시 지음
상관체(上官體)
제11강 당시(Ⅰ)
초당사걸 (初唐四傑)
왕발(王勃) 양형(楊炯) 노조린(盧照隣) 낙빈왕(駱賓王)
①
왕발(王勃)
- 오언율시와 오언절구 형식의 시를 많이 지음.
- 산문도 잘 지음.
-「등왕각서(滕王閣序)」는 명문으로 전해짐.
제11강 당시(Ⅰ)
滕王閣序 (등왕각서)
滕王高閣臨江渚
佩玉鳴鑾罷歌舞
畵棟朝飛南浦雲
朱簾暮捲西山雨
閑雲潭影日悠悠
物換星移度幾秋
閣中帝子今何在
檻外長江空自流
등왕각 높은 누각 강가에 있는데
패옥 소리, 방울 소리 노래 와 춤도 끝났구나
화려한 누각 기둥에 아침에 날아오른 것은 남포의 구름
붉은 발 저녁에 걷히니 서산에 내리는 비
한가한 구름 못에 비치고 해 아득하니
해 바뀌고 별 지니 몇 해가 지났는가
누각 안 왕자는 지금 어느 곳에 있는가
난간 밖 긴 강물은 속절없이 흘러간다
제11강 당시(Ⅰ)
② 양형(楊炯)
- 문재(文才)를 자부하였으나 독창성은 부족하며
변경생활과 전쟁을 주제로 한 작품들 속에 격앙
된 정서가 잘 나타남.
-「종군행(從軍行)」,「출새(出塞)」,
제11강 당시(Ⅰ)
從軍行 (종 군 행)
烽火照西京, 心中自不平
봉 화 조 서 경, 심 중 자 불 평
牙璋辭鳳闕, 鐵騎繞龍城
아 장 사 봉 궐, 철 기 요 용 성
雪暗凋旗畵, 風多雜鼓聲
설 암 조 기 화, 풍 다 잡 고 성.
寧爲百夫長, 勝作一書生.
녕 위 백 부 장, 승 작 일 서 생.
싸움터로 나가면서
봉화가 서경에 비추이니
마음이 절로 편치 않도다.
출정군의 위용을 갖추고 궁성 하직하고
용맹한 기병은 용성을 에워싼다.
자욱한 눈발에 깃발의 그림도 희미하게 흐려지고
바람은 거세어져 북소리와 섞이네.
백명을 거느린 하급 지휘관일지라도
일개 서생보다는 나으리라.
제11강 당시(Ⅰ)
③ 노조린(盧照隣)
- 병고와 가난으로 말미암은 슬프고 괴로운 정을
시로 읊었다.
- 「행로난(行路難)」,「장안고의(長安古意)」등
진실한 감정에서 우러나온 서정. 율시(律 詩),
특히 칠언가행(七言歌行)을 잘 지음.
제11강 당시(Ⅰ)
④ 낙빈왕(駱賓王)
- 협기(俠氣)가 강하여 비장한 감정을 노래한 작
품이 많음.
- 노조린처럼 장편가행에 뛰어남. 장편「제경편
(帝京篇)」,「주석편(疇昔篇)」
- 칠언가행 「대곽씨답노조린」,「대증도사이영」
등도 노조린의 「행로난」,「장안고의」 와 풍
격이 비슷함.
제11강 당시(Ⅰ)
⑤ 특징
- 제,량의 유미주의 계승하면서도 궁정시인의 무
리에서 벗어나 독자적 활동함.
- 육조의 기풍을 완전히 탈피하여 사회생활을
표현하는데 힘을 기울임.
- 강건하면서 청신한 격조.
- 점차 율시의 체제를 확정시킴.
제11강 당시(Ⅰ)
近體詩의 완성
①문장사우:
최융(崔融) 이교(李嶠) 소미도(蘇味道) 두심언(杜審言)
- 조정에서 측천무후를 비롯한 황제의 명을 받들어
글을 짓던 사람들로 궁정시인임.
- 응제(應制)의 오언율시를 가장 많이 지음.
제11강 당시(Ⅰ)
- 근체시인 율시의 격률은 심전기와 송지문에게서
완성을 본 것으로 얘기되어짐.
근체시의 격률은 오언율시에서 먼저 완성 되고
뒤이어 칠언율시와 절구가 이루어짐.
②
심전기(656-713)
- 자 : 운경(雲卿). 궁중시인.
- 송지문과 함께 ‘심송 (沈宋)’이라 불림.
칠언시 잘 지음.
③
송지문(656-712)
- 자 : 연청(延淸). 궁정시인. 오언시에 뛰어남.
제11강 당시(Ⅰ)
③
진자앙(陳子昻)(661-702)
- 초당의 제․량 궁체 시풍을 반대하고 한위의 풍골을
주장하여 성당의 길을 열어준 작가.
- 자 백옥(伯玉). 육조 이래로 중시하여온 시의 형식과
허식적인 면을 버리고 시에는 흥기(興寄)가 있어야
하고 골육(骨肉)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작자의
개성적인 생명과 감정을 내세움.
제11강 당시(Ⅰ)
- 이상을 추구하였으나 실패하고 마는 감개를 표현
한것 많음.「감우시(感遇詩)」38수.
- 궁체시의 풍격을 따르지 않고 건안시가의 전통을
직접 계승.
- 두보는 “공(진자앙)은 양웅, 사마상여 뒤에 태어
났
으나 이름은 해나 달처럼 뚜렷하네 …… 고금의 충
의를 세웠으니 남겨 놓은 시로 「감우시」가 있네”
라고 노래하였다.
제11강 당시(Ⅰ)
-「당서(唐書)」그의 본전(本傳)에서는 “당나라
가 일어나자 문장은 서릉(徐陵), 유신(庾信)의
여풍을 계승하여 온 천하가 이를 숭상하였는데,
진자앙이 비로소 이를 우아하고 올바르게 변화
시켰다.”라고 평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