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과 서대문 형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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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학년 7반 2번 이재원
경복궁의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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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의 법궁, 조선의 중심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다섯 개의 궁궐 중 첫 번째로 만들어진 곳으로, 조선 왕조의 법궁이다. 한양을 도읍으로 정한
후 종묘, 성곽과 사대문, 궁궐 등을 짓기 시작하는데 1394년 공사를 시작해 이듬해인 1395년에 경복궁을 완성한
다. ‘큰 복을 누리라’는 뜻을 가진 ‘경복(景福)’이라는 이름은 정도전이 지은 것이다. 왕자의 난 등이 일어나면서 다
시 개경으로 천도하는 등 조선 초기 혼란한 정치 상황 속에서 경복궁은 궁궐로서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하다가 세종
때에 이르러 정치 상황이 안정되고 비로소 이곳이 조선 왕조의 중심지로 역할을 하게 된다.
경복궁은 임진왜란 때 불이 나 무너지게 되는데 조선 말 고종 때 흥선대원군의 지휘 아래 새로 지어진다. 경복궁 중
건을 통해 조선 왕실의 위엄을 높이고자 하였지만 얼마 되지 않아 건천궁에서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사건이 일어난
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이 이곳을 떠나 러시아공사관으로 가게 되니, 단청의 색이 채 마르기도 전에 또 다시
빈집이 되어 버리는 비운을 겪는다.
일제 때 중앙청이라 불렸던 조선총독부 건물을 경복궁 내에 만듦으로써 조선 왕조의 상징을 훼손하고 조선의 자존
심을 무너뜨렸으며, 정문인 광화문 또한 해체해 지금의 건춘문 자리 근처로 옮겨버렸다. 광화문은 이후 1968년 복
원되는데 당시 남아 있던 중앙청 자리를 기준으로 해서 세우다 보니 원래 경복궁 건물들이 이루고 있는 선상에서
벗어나 삐뚤게 놓이게 되었다. 현재 다시 제자리를 찾아주기 위하여 복원 중이다.
광화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경복궁의 중심인 근정전을 만난다. 2층 월대 위에 장엄하게 서 있는 건물로 임금의
권위를 상징하는 건물이자 공식 행사나 조회 등에 사용한 건물이다. 근정전 월대 난간에는 주작, 백호, 현무, 청룡
이 각 방위에 따라 새겨져 건물을 지키고 있다. 근정전 뒤로는 임금의 사무실이라 할 수 있는 사정전과 침실인 강녕
전, 왕비가 거처하였던 교태전이 이어진다.
근정전을 바라보고 왼편으로 나가면 연회의 장으로 사용되었던 경회루를 보게 된다. 인공 연못 위로 지어진 2층 누
각 건물로, 남아 있는 목조 건축물 중에서 크기로도 또 아름답기로도 손에 꼽히는 건물이다. 경복궁에서 빠뜨리지
말고 보아야 할 것이 교태전 아미산과 자경전 장생 굴뚝으로, 굴뚝 원래의 기능적인 역할에 더하여 여성이 거주하
는 공간으로 미학적인 요소도 함께 고려한 작품이다.
경복궁의 모습
서대문 형무소
 을사조약 이후 국권 침탈을 시작하면서 일제가 만든 시설로, 1908년 경
성감옥으로 만들어 1912년 서대문형무소로 이름을 바꾸었다. 정해진 법
과 규율을 어기면 그 벌로 감옥에 들어가게 되지만, 일제 때 정한 법과
규율은 그들이 조선을 다스리기 위한 만든 것으로, 독립을 위해 법을 어
기며 저항했던 조선사람들을 수용할 큰 교도소가 필요했던 것이다.
1987년 의왕으로 이전하기까지 사용되었으며 안으로 들어서면 일제 때
지어진 옥사와 작업장, 전시관 등을 둘러볼 수 있다.
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101번지에 위치한 일제시대 감옥.
1907년 시텐노가즈마(四天王數馬)의 설계로 착공, 다음 해 '경성감옥(京城
監獄)'이란 이름으로 문을 연 후 80년 동안 약 35만 명을 수감, 숱한 민족의
수난사를 잉태하였다.
1912년 서대문감옥, 1923년 서대문형무소, 1946년 경성형무소, 1950년 서
울형무소, 1961년 서울교도소 등의 명칭을 거쳐 1967년 서울구치소로 개칭
되었고, 1987년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한 이후 1998년 사적(史
蹟) 제324호로 지정되었다.
서대문 형무소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