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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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유관순에 대하여

만든이 : 정보연
출생일 : 1902년 12월 16일
사망일 : 1920년 9월 28일
출생지 : 충청남도 천안
가족 : 아버지 유중권 어머니 이소제 오빠 유관옥
유관순은 충청남도 천안에서 태어나 1915년 선교사의
소개로 이화학당 보통과 2학년에 편입하였으며, 1918년
에는 고등과 교비생으로 입학하였다.
이화학당에서의 생활은 매우 행복한 나날이었다. 교장의 보살핌 속에 선진 학문
을 공부할 수 있었고, 또 금세 선후배 학생들과 친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행복한 학교생활 속에서도 조국과 민족에 대한 한결같은 사랑을 잃지 않았다.
유관순은 마음속으로 기도하면서 다짐하였다고 한다.
3·1운동
유관순 열사는 장터 어귀에서 태극기를 나누어 주면서 만세 시위운동에 참여하러
모여드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정오가 되자 군중 앞에서 “여러분 우리에겐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나라가 있
었습니다. 그러나 일본놈들은 우리 나라를 강제로 합방하고 온 천지를 활보하며 우
리 사람들에게 가진 학대와 모욕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10년 동안 나라 없는 백
성으로 온갖 압제와 설움을 참고 살아왔지만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나
라를 찾아야 합니다. 나라 없는 백성을 어찌 백성이라 하겠습니까. 우리도 독립만세
를 불러 나라를 찾읍시다”라고 열변을 토해냈다.
유관순 열사는 천안헌병대에서 갖은 고문을 받으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시위 주동자라고 말하면서 죄 없는 다른 사람들을 석방하라고 호통치기도 하였
다.
법정에서도 일제의 재판을 거부하는 당당함과 민족적 기개를 잃지 않았다. 그러
나 5월 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을 받게 된 선생은 경성복심법원에 공소하
였다.
6월 30일 경성복심법원에서도 징역 3년을 받게 되어 같은 해 9월 11일 형이 확정
되었다. 이후에도 서대문감옥에서의 온갖 탄압과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지속적으
로 독립 만세를 불렀고, 특히 1920년 3월 1일 3․1운동 1주년을 맞이해서는 수감
중인 동지들과 함께 대대적인 옥중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유관순 열사는 지하 감방에 감금되어 야만적이고 무자비한 고문을 당하게 되었
다. 그리하여 결국 선생은 고문으로 인한 장독으로 1920년 9월 28일, 서대문감옥
에서 18살의 꽃다운 나이로 사망하고 말았다.
▲ 유관순 열사의 서대문 감옥 수형자 기록표 사
진.
◀ 유관순열사
초혼묘 .
이화학당의 유
관순 사진 ▶
▲ 서울복심법원 판결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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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