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신학 다시 하기.(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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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20. 신학 다시 하기.(18)
20. 신학 다시 하기(막 12:18-44)
유대 지도자들과의 분쟁
갈릴리(피지배 지역): 막 2:1-3:6
예루살렘-성전(지배체제 중심): 막 12:18-44
명예와 수치(Honor and Shame)
지중해 연안 민족의 문화, 사회적 가치
유대 지도자들의 시비: 네가 성경을 아느냐?
예수의 응답: 너희는 성경도 하느님의 능력도 모른다(12:24)
사두개인
o 유대 지도층 중 가장 현실적이고 보수적 집단. 현 지배체제 옹호
o 요세푸스=> 사두개인은 재물을 밝히고,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함.
부활—다시 읽기
o 영어로 resurrection은 라틴어 resurgo (re+surgo)에서 유래, rise up
o 헬라어 아나스타시스(ἀνάστασις) ana + histemi (Stand up) =>어떤 상황으로부터
(다시, 바로) 일어섬
o 육체적으로 죽었다가 다시 사는 것은 신학적으로 문제
1. 구약에는 그런 신앙이 없고, 또 부활을 통해 과거로 회귀하려는
움직임=>현상유지(status quo)
2. 사두개인의 입장—현실주의, 보수주의 => 부활 후 삶도 현생의 연장선에서
이해
3. 많은 신자들 입장=> 현 체제는 유지하되, 보다 풍족한 혜택을 꿈꾸며 대형
스마트 텔레비전, 고급 자동차, 큰 집, 금으로 치장한 도로 그리고 그 옆에는
미화(dollars)가 무성한 가로수 ^^
계대결혼(繼代, levirate marriage); 신 25:5-10
본래는 죽은 자의 이름과 유산을 보호할 목적
일곱 형제=> 누구 아내? (여인은 소유물)
사두개인은 기존 체제 속에서 부활을 이해 (그들은 부활을 믿지 않음)
예수의 부활 이해
다른 세상, 다른 체제와 다른 가치관
모세의 계대결혼 제도가 필요 없는 세상. Q. 제도를 통해 이루고
보호하려는 것은? (사회보장 제도) 현 체제와 제도의 한계
다가 오는 세상에서는 결혼을 통해 연명하는 그런 삶이 아니다. 제도에
억매인 삶이 아니다.
죽은 자의 하느님이 아니고 산 자의 하느님이다(막 12:27 // 출 3:6)
죽은 자란?
o 숨쉬지 않는 사람? 그럼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삭, 야곱은? (모두 죽은 자들)
o 구역장 모임? 죽은 자의 신은 모트(Mot), 바다의 신은 얌(Yam) => 계시록
o 지역구 하느님(신 32:8-9) vs. 전국구 하느님
산 자의 하느님
o 하느님께 대하여 산 자, 그런 사람의 하느님(눅 20:38)=> For all live unto God
o 모두가 하느님과 관계 속에서 살도록 되어 있다. 제멋대로 살지 않는다.
1.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요, 하느님께 대해서는 산 자(롬 6:11)
2.
무덤에서 부활=> 마태복음의 부활이야기
o 죽은 자—참 인간 본연의 삶을 못사는 사람—의 욕심이나 채워주는 하느님이 아님.
o 당시 부활 개념이 있고, 성서가 내세를 말하고 있다면, 그런 세상은 현 지배체제의
욕심이 손 닿지 않는 거리에 있다
힐렐(Hillel)과 삼마이(Shammai) 이야기
삼마이는 이방인을 내쫓음
힐렐 왈(曰): 네가 싫어하는 일을 이웃에게 하지 말라
가장 큰 계명
신 6:4, 야훼 하느님이 네 하느님. 오직 그만 섬기라 (정체성)
레 19:18,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행동강령)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 => 일이관지(一以貫之), 일관성 있는 신학;
공자의 道는 충(忠)과 서(恕) => 경천애인
서기관의 대답: 내적 온전함이 외적 온전함(제사) 보다 낳다 => 네
말대로 살아라.
그리스도가 다윗의 후손인가?
전통 예루살렘(시온) 신학: Yes
예수: No
근거: 주(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마가복음
시편 110편 (LXX 109)
저자
다윗
Unknown: rwdl (다윗에게…)
주
주 (ku,rioj)
여호와 (hwhy) => 주 (ku,rioj)
내주
주 (ku,rioj) =>그리스도(cristo,j)
주 (!wda) => 주 (ku,rioj)=>
다윗( 시2:2)
이야기 배경, 문학적 설정
o 서기관 이야기의 연속(12:28-32, 35-37, 38-44)
o 서기관은 상석을 원하고, 풍족한 가운데 종교활동 (취미 생활)
과부의 헌금/세금(?)
o 예수는 헌금함 맞은 편에 서서 구경(12:41; 13:2-3). 무슨 태도?
o 두 렙돈은 1/64 데나리온=> 잘하면 99전 짜리 cheeseburger, 아니면
전화 한 통화
칭찬일까?
o 과부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다(100% 헌금); 그럼 부자도 100 million한다?
o 아니다! 과부의 재산을 가로챈 그 서기관이 다니는 성전(교회)에 나머지를
또 낸다/바친다.
o 이런 체제는 무너져야 한다 =>곧바로 13장과 연결
신앙생활이란 취미 활동이 아니다. 게임이 아니라 겜블(All-In)이다.
o 취미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투자(보험)도 아님.
o 치열한 현실 속에서 선택(가치관) 문제
신앙생활과 부활은 늘 같이 간다.
o 부활신앙은 인생이 끝난 후 이야기가 아닌, 현재 여기서 삶의 전환 모색
o 부활=중생 => 새로운 삶
부활은 하느님께 대해서 사는 삶이다.
o 내 욕심을 종교적 힘을 빌어 초자연적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o 하느님 뜻대로 사는 삶이 부활신앙의 시작이자 끝
1.
2.
기존의 신학 혹은 교회의 가르침 중에서 내 실존과
상충되는 것은? 구체적인 예를 들라. 나는 이것을
어떻게 (재)해석하는가?
교회의 헌금이 어떻게 쓰여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