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이 알려주는 성모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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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구약성경이 알려주는 성모 마리아

성경에서 만나는 성모마리아
1.구약성경이 알려주는 성모 마리아
2.신약성경이 전해주는 성모 마리아
성모신심 레지오 마리애
발표자 오철호 스테파노
하느님의 인간사랑
“구약성경이 알려주는
성모 마리아”
구약성경에는 더더욱 마리아가 하느님의
구원 계획안에 깊이 감춰져 있어서
“마리아”라는 이름을 직접 거론하는 구절은
없습니다.
하지만 구약에서 메시아에 관한 예언이
나오고 그 메시아를 낳은 어머니에 관한
구절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창세3,15)
“원복음(元福音), 또는 “최초의 기쁜 소식“
여자 – 하와나 마리아를 암시
후손 – 예수 그리스도
이를 원복음(元福音), 또는 “최초의 기쁜
소식“ 이라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낙원에서 추방되었지만,
그들을 타락시킨 뱀이 여인의 후손에게
머리를 짓밟힐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 구절에서 여인은 화와나 마리아를
암시하며,
후손은 예수 그리스도를 지시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이 세상의 통치자와 맞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두 분의 순명이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으로 틀어놓은 역사를 바르게
되돌린 것입니다.
이사야서에서도 성모 마리아가 간접적으로
관련된 구절을 만납니다.
한 처녀가 아이를 잉태하고 그 탄생으로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고 예고합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손수 그 징표를
보여주실 것이라고 예언한 것입니다. 이
예언에 대해서 두 가지 점에 관해 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나뿐 것을 물리치고 좋은 것을 선택할 줄 알게
될 때,
그는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입니다.’ (이사7,14)
첫 번째는징표는
히 브 리 어 “ 알 마 Almah" 라 는 단 어 입 니 다 . 이
단어는 ”젊은 여인“ 이라는 의미입니다.
“처녀” 라는 단어로는 “베틀라Betuiah" 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훗날 마태오 복음사가는 “알마” 라는
히브리어를
“파르 테노스”(처녀, 또는 동정녀)라는 그리스어로
번역하였습니다.
물론 “젊은 여인은 ”동정녀“일 수도 있습니다만,
반드시 ”동정녀“ 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마태오 복음사가는 “동정녀” 일 때 이 사건이
더 기적적인 징표가 된다고 해석한 셈입니다.
징표란 기적적인 일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직접적으로 메시아적 징표를 지시하는
사건이냐, 아니면 간접적으로만 메시아적
징표가 되는 사건이냐, 혹자는 이사야
예언자가 아하즈 왕의 부인과 그의 아들
히즈키야를 가리키며 다윗 왕조의 지속을
의미하는 사건으로 해석합니다.
많은 신학자들은 마태오 복음사가와
마찬가지로 먼 훗날의 성모 마리아와 예수
그리스도를 지시하는 사건으로 이해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조롱하려 “유대인 왕
나자렛 예수” 라고 십자가에 쓴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그런 말로
예수님을 조롱하려 했지만, 그들의 의도와
달리 예수님의 탄생이 오늘날 서력기원이
될 만큼 세상의 왕이심을 예언한 것이
되었습니다.
미카 예언서에서도 메시아의 어머니로서
성모 마리아와 간접적으로 관련된 구절을
만납니다.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
나오리라. 그의 뿌리는 옛날로, 아득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므로 해산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주님은 그들을 내버려
두리라. 그 뒤에 그의 형제들 가운데 남은
자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돌아오리라.
그는 주님의 능력에 힘입어 주 그의 하느님
이름의 위엄에 목자로 나서리라. 그러면
그들은 안전하게 살리니 이제 그가 땅 끝까지
위대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자신이
평화가 되리라.”(미카5,1-4)
미카서 에서는 메시아 탄생이 더욱 구체적으로
예언됩니다. 베들레헴의 한 여인으로부터
메시아가 태어난다고 하는 예언은 앞선
이사야 예언에 대한 메아리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이사야 예언자의 메시아 탄생지
베들레헴까지 예언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했을 때 동방박사들이 별을 보고
먼 길을 떠나 아기 예수에게 경배하러
왔지만, 별이 없어지자 성경학자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바로 이 미카
예언서를 통해서 아기 예수의 탄생지를
동방박사들에게 알려 줄 수 이었던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 ”아나빔“ 의 참 뜻은 돈과
명예보다 하느님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메시아를
잉태하고 이스라엘을 재건하는 마리아는
시온의 딸의 모범적 모델이며, 또 다른
모습으로는 교회가 세상을 다시 재건하면서
본받아야 할 모델이 된다는 것입니다.
“딸 시온아, 환성을 올려라, 이스라엘아, 크게
소리쳐라. 딸 예루살렘아 마음껏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스바3,14)
“딸 시온아, 한껏 기뻐하여라. 딸 예루살렘아,
환성을 올려라. 보라, 너의 임금님이 너에게
오신다. 그분은 외로우시며 승리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겸손하시어 나귀를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즈카9,9)
스바니아서 에서는 심판을하고
다음 벌을내리리라 단죄하라 경고와
회개를하라
예루살렘의 재건을 선포하며
딸시온아 하고환성을 토합니다.
기뻐하여라”라는 인사말은 천사 가브리엘이 성모
마리아에게 드렸던 것임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성모마리아는 베들레헴에서 구세주의 출산으로
기쁨을 맞이하였습니다. 또한 갈바리아 산상의
십자가 아래에서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교회탄생의 기쁨을 맞이하였습니다.
구약에는 이밖에도 마리아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구절이 많습니다. 아기를 출산함에도
여전히 보존되는 마리아의 동정을 나타내는
“불타는 떨기나무”(탈출 3,2참조)역시 그 중
하나입니다. 성모 마리아야말로 그 태중에
하느님의 아들을 모셨던 썩지 않은 “계약의 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여인은 그 이름이 임마누엘이라 불릴
아들을 잉태하여 낳을 동정녀이다
(이사7,14:미카5,2-3 마태1,22-23참조)
그 여인은 신뢰로 주님께 구원을 바라고 받는
주님의 비천하고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서
빼어난 분이다.
약속의 오랜 기다림 뒤에, 마침내 빼어난
시온의 딸인 이 여인과 더불어 때가 차고
새로운 계획이 시작되었으며, 그때에
하느님의 이 여인에게서 인성을
받아들이시어 당신 육신의 신비로 인간을
죄에서 해방시키셨다.”(교회헌장,55항)
구약에는 마리아의 이름이 분명하게 나오지
않지만 ,메시아 탄생과 그 어머니인
마리아를 간접적으로 ,또는 암시적으로
언급하는 많은 구절들을 볼 수 있습니다.
성모 호칭기도 역시 이러한 구약성경의
표징들을 한껏 드러내고 있습니다. “정의의
거울”, “상지의 옥좌“, ”신비로운 그릇“,
”신비로운 장미“, ”다윗의 탑“, 상아탑”,
“황금궁전”, “샛별“, ”하늘의 문“, 등등,
감춰져 있던 성모마리아의 신비가 점차
드러나는 셈입니다.
그러므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헌장은
구약성경에서의 성모 마리아의 신비를
요약하여 결론 내리듯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그리고 존귀한 성전은
구원 계획안에서 맡으신 구세주 어머니의
임무를 갈수록 더욱 더 분명하게 밝혀 주며
마치 눈앞에 보여 주듯이 제시하고 있다.
참으로 구약성서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심을 느린 걸음으로 준비하는 구원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교회 안에서 제대로 읽혀지고 충만한 마지막
계시에 비추어 이해되는 그 초기 문서들은
구세주의 어머니인 여인의 모습을 한
걸음씩 더욱 분명하게 밝혀 주고 있다.
여기에 비추어보면, 죄에 떨어진 첫
조상들에게 주어진 약속, 뱀을 이기리라는
승리에 대한약속(창세 3,15참조) 안에 그
여인의 모습이 이미 예언적으로 어렴풋이
그려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이 여인은 그 이름이
임마누엘이라 불릴 아들을 잉태하여 낳을
동정녀이다(이사7,14:미카5,2-3 마태1,2223참조) 그 여인은 신뢰로 주님께 구원을
바라고 받는 주님의 비천하고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서 빼어난 분이다.
약속의 오랜 기다림 뒤에, 마침내 빼어난
시온의 딸인 이 여인과 더불어 때가 차고
새로운 계획이 시작되었으며, 그때에
하느님의 이 여인에게서 인성을
받아들이시어 당신 육신의 신비로 인간을
죄에서 해방시키셨다.”(교회헌장,55항)
“신약성경이 전해주는
성모 마리아”
신약성경관련 동영상 5분상영
사도 바오로가 이해한 성모 마리아
“하느님의 육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신 어머니”
지금부터는 신약성경에서 성모 마리아를
얼마만큼 이해하며 알려주는가를 알아
봅시다.
바오로 사도가 서간에서 성모님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간접적으로, 또는 암시적으로
언급한 구절들이 있습니다. 우선 첫 번째로
갈라티아서를 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이들을 속량하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 되는 자격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갈라4,4-5)
여기에는 마리아라는 이름도 없고, ‘여인에게서
태어났다.’는 이 한마디 말 뿐입니다.예수님이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심을, 여인으로부터
태어나셨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여인에게서 태어난다.’는 것은 여는 인간처럼
나약성을 지닌 모습을 말합니다.
하느님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여인에게서 태어나
우리와 똑같이 나약함을 지닌 존재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참된 인성을 지니게 됐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여인으로부터’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많은 신학자들은 바오로 사도의 성모님에 관한 모든
신학적 진술의 출발점을 여기에 두고 있습니다.
마르코 복음사가가 이해한
성모 마리아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신 어머니”
4복음서 중 가장 먼저 쓰인 마르코 복음에는
성모 마리아와 관련된 이야기가 두 번
정도 나옵니다.
“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다.
그들은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냐?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르3,31-35)
이 장면에서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들은 예수님도 당신
어머니와 형제들을 배척하였는데, 가톨릭교회에서는
왜 성모님을 공경하느냐고 따집니다.
그러나 이 구절이야말로 예수님이 성모 마리아가 자신을
낳은 어머님이실 뿐 아니라. 하느님 뜻을 행한
분으로서 ‘내 어머니이시다’라는 것을 강조하는
반어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세상 어떤 여성도 아무리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따른다 해도,
예수님의 어머니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자매는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따라서 예수님의 어머니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어머니인 마리아 밖에 없습니다.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이 마르코 복음의 성모
마리아는 예수님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소위 ‘반 마리아적 자료’로 보고 있으나.
그러나 그러한 해석은 정당하지 못하다.
오히려 예수님이 성모 마리아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비밀의 메시아라는 마르코 복음사가의
기본적 입장이 반영되어 있을 뿐입니다.
여기에는 메시아의 비밀만이 아니라
‘마리아의 비밀’도 간직되어 잇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목수’, ‘마리아의 아들’,
‘인간’으로 불리면서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 ‘그리스도’라는
신분이 감추어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새로운 ‘종말론적 가족’, ‘예수의
형제’, ‘예언자를 환영하지 않는 친척과
집안’등의 표현 속에서 성모 마리아가
참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했던
예수님의 어머니로서, 낳을 때까지만이
아니라 그 후에도 여전히 동정이라는
사실이 감추어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사가가 이해한
성모마리아
“하느님의 선택을 받으신 어머니”
마태오 복음은 마르코 복음보다 성모 마리아에 관하여
더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유년기를
이야기하면서 그와 관련된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전해
줍니다.
마태오 복음은`부활하신 예수님의 증언자로 열두
제자들을 비롯한 사도들을 내세우는 한편,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관한 증언자로는 성모 마리아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태오 복음에는 성모 마리아가
예수님의 어린 시절과 관련되어서 등장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공생활과 관련하여서도 몇 번
등장합니다. 공생활에서의 성모님 모습은 마르코
복음이나 루카 복음에서도 약간의 표현만 다를 뿐
공동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우선 마태오 복음 1장의 예수님의 족보에서 성모
마리아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 아 브 라 함 은 이 사 약 을 낳 고 [...] 유 다 는
타마르에게서 페레츠와 제라를 낳고 [...]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즈를 낳고 보아즈는
릇에게서 오벳을 낳았다 [...] 다윗은 우리야의
아 내 에 게 서 솔 로 몬 을 낳 고 [...] 야 곱 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마태1,2-16)
이 족보에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우선 세 가지 형식이
있습니다. 첫째 형식은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았다.”
즉 ‘<가>는 <나>를 낳았다’는 도식입니다. 둘째는
“유다는 타마르에게서 페레츠와 제라를 낳았다.” 즉
‘<가>는 <나>에게서 <다>를 낳았다’는 형식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즉 ‘<가>는 <나>를
낳았는데, <다>에게서 <라>가 태어났다’는
도식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예수를 낳았다’도
아니고, ‘요셉은 마리아에게서 예수를 낳았다’도
아닙니다. 이러한 도식을 통해서 예수님은 성모
마리아에게서 동정으로 태어나셨음을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물약을 예물로 드렸다”
(마태2.10-11)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또 마태오 복음 2장13절에는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셉의 ’아들‘과
’아내‘라는 표현이 아니라 ’아기‘와 ’그
어머니‘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요셉 성인이
아기 예수님의 친 아버지가 아니라 양
아버지라는 점이 잘 드러나는 표현들입니다.
내가 세상 끝날 때 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28,20)이런 점을 고려할 때,
이사야 예언서 7,14에서 불투명하게
드러났던 ‘젊은 여인(알마)’이
‘동정녀(파르테노스)’분병하게 드러납니다.
그리고 예언자들의 예언들을 고려할 때.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 속에서
일찍부터 선택된 분이라는 점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의 방문은 메시아의 왕권을 잘 부각시켜
줍니다.
그리고 그분이 참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
곧 임마누엘이라는 사실을 성모 마리아의 동정
잉태가 잘 증언해 준다고 본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 말미에는 예수님이 임마누엘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있습니다.“
루카 복음사가가 이해한
성모마리아
“주님의 종으로서의 어머니”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관하여 알려주는 복음서는
루카 복음서와 마태오 복음서입니다.
예수님 탄생과 관련해 루카 복음과 마태오
복음이 공통적으로 전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마리아과 요셉은 둘 다 나자렛 출신으로 약혼한
사이이며, 요셉은 다윗 가문의 후손이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으며,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출생했다는 사실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님
잉태를 알려주는 루카 복음1장의
‘탄생예고’를 전하는 기사는 마리아가
어떤 분인지를 잘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자료입니다.
학자들은 이를 두고 성모 마리아에 관한
‘황금자료’라도 말합니다.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서,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네 친척 엘리사벳 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 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지 여섯 달이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제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루카 1,26-38)
특히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38절) 라는 신앙의 순종은
인류 역사를 바꾼 중용한 전환점이 됩니다.
이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실 때 아버지
하느님께 바쳤던 기도, 즉“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루카 22,42)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 뜻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마리아와 예수님의 철저한 순종은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으로 인해 하느님께 등을 돌린 역사를 다시
되돌려 아버지 하느님을 향하게 하신 것입니다.
루카 복음1장은 성모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는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이 기록은 왜 가톨릭 신자들이 성모 마리아를
공경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려줍니다.
“그 무렵에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제에게 오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루카1,9-45)
성모님을 공경하는 이유는 바로 여인들 중에 가장
복된 까닭입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분이기 때문입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
무엇보다 그분은 ‘은총이 가득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준 일종의 계시입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이 닥치면 비로소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주로 청원기도입니다.
기도에는 감사기도, 찬미기도, 속죄기도가 있습니다.
하느님께는 찬미와 감사기도가 더 합당할 것입니다.
물론 청원기도도 필요 합니다.
우리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 없을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대화와 만남에서 더 좋은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이 문제 해결의 지름길이듯, 진정한
기도는 내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길
바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과 의견이 문제 해결에
더 나은 해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루카 복음에서 아름다운 신앙의 노래
마니피캇 Magnificat. 곧 마리아의 노래 (루카
1,46-55)를 들을 수 있습니다.
“주님을 찬송하는 어머니”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 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 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 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 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루카 1,46-55)
마리아의 노래가 과연 성모님이 지은 것인지
여부는 학자들마다 논란이 분분하지만, 어쨌든
이 노래는 구약에 나타나는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부르는 ‘한나의 노래’(1사무 2,1-10)와도
닮아 있습니다.
그리고 뒤에 나오는 ‘즈카르야의 노래’(루카 1,6879)와도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이 노래에서 우리는 성모님의 겸손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하느님께 대한 애틋한 사랑의 떨리고 설렌
적이 있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성모님처럼
우리도 하느님 때문에 가슴이 떨리고 설렌 적이
있는지 살펴볼 일입니다.
“가난한 어머니”
우리는 또 베들레헴에서의 예수님의 탄생(루카 2,17)에 관한 기록을 루카 복음에서 봅니다.
“그 무렵 아우구스트스 황제에게서 칙령이
내려,
온 세상이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다.
이 첫 번째 호적 등록은 퀴리니우스가 시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에 실시되었다.
그래서 모두 호적을 등록하러 저마다 자기
본향으로 갔다. 요셉도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 고을을 떠나 유다 지방,
베들레헴이라고 불리는 다윗 고을로
올라갔다.
.
그가 다윗 집안의 자손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자기과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
등록을 하러 갔는데, 마리아는 임신 중
이었다.
그들이 거기에 머무르는 동안 마리아는
해산날이 되어, 첫아들을 낳았다.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루카2,1-7)
이어 천사가 목동들에게 예수님 탄생을 알리고,
아기 예수를 찾아 경배하는 목동들의 모습
(루카2,8-20)이 전해집니다.
목동들의 경배에는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루카2,14)라는 천사들의
찬미가 나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하느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이 세상을
반듯하게 살 때 우리는 하느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습니다.
성모님이 요셉과 함께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봉헌하는 장면도 루카 복음에서 볼 수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 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그들은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 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그들은 또 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루카2,22-24)
성모님은 모세의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신 분으로
나타납니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주님의 율법에’ ‘주님의
율법에서’ 라는 표현이 거듭 나오고, ‘기록된
대로’ ‘명령한 대로’ 행하셨다는 표현도 거듭
나옵니다.
그처럼 성모 마리아의 성 요셉은 당시 유다교가
요구하는 모든 규정을 지키셨습니다.
“고통의 어머니”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시메온과 한나에게도
알려집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공적으로 알려진 공현 사건의 가지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계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해여 이야기하였다.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루카2,25-39)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목동, 동방 박사, 시메온과
한나에거 아기 예수님의 탄생이 알려진 것은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들과 이방인들,
부자들, 가난한 사람들, 노인과, 어린이, 많이
배운 사람과, 배우지 못한 사람, 남자와 여자
모두를 대표하는 모든 부류의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아들의 탄생을 공적으로 알려준
사건이라고 설명합니다.
그처럼 아기 예수님과 만난 시메온과 한나는
하느님 아들의 탄생을 공증하는 이스라엘의
경건한 사람들, 곧 노인들과 여성을 대표하는
인물이 된 것입니다.
“인격적인 어머니”
. 모든 아기가 엄마에게서 많은 것을 배워나가듯
아기 예수님도 배움이 필요했습니다.
이 복음 구절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가
인간적 성장 과정 없이 쑥쑥 자라는 것과 달리,
예수님의 성장 과정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 까닭에 엄마의 존재가 매우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사실도 잘 알려 줍니다.
예수님이 소년 시절 (루카2,41-52)를 보면
예수님이 부모를 따라 파스카 축제를 지내러 간
사실이 전해집니다.
“예수님의 부모는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가곤하였다.
예수님이 열두 살 되던 해에도 이 축제 관습에
따라 그리로 올라갔다.
그런데 축제 기간이 끝나고 돌아갈 때에 소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가대로 남았다. 그의
부모는 그것도 모르고, 일행 가운데에
있으려니 여기며 하룻길을 갔다.
그런 다음에야 친척들과 친지들 사이에서
찾아보았지만,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그를 찾아다녔다.
사흘 뒤에야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그는
율법 교사들 가운데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그의 말을 듣는 이들은 모두 그의 슬기로운
답변에 경탄하였다.
예수님의 부모는 그를 보고 무척 놀랐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하자,
그가 부모에게 말하였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 갔다.”
(루카2,41-52)
파스카는 ‘건너뛰다’라는 히브리어 ‘페사흐’에서
유래합니다. .
그러므로 이제 파스카는 노예의 삷에서 자유인의
삷으로 건너뛰는, 더 큰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을 통해 파스카
예식의 의미를 한층 더 높였습니다. 이제
파스카는 재산을 지키거나, 노예의 삶으로
건너뛰는 초월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날마다 드리는 미사,
파스카로부터 유래하는 이 미사는 유한의
삶에서 무한의 삶으로 도약하는 우주의 제사가
되었습니다.
“행복한 어머니”
다른 복음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루카 복음 (11,2728)에만 나오는 기록도 있습니다. 군중에게
연설하시는 예수님께 한 여인이 던진 외침입니다.
“예수님께 이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군중
속에서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하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 (루카11,27-28)
“제자로서의 어머니”
루카 복음사가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사도행전에서 성모님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르코 복음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던 예수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마태오,루카 복음 등 세월이
갈수록 더욱 자세히 드러납니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은
발로 성모 마리아의 증언입니다.
“사도들은 올리브 산이라고 하는 그곳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그 산은 안식일에도 걸어갈 수 있을 만큼
예루살렘에 가까이 있었다.
성안에 들어간 그들은 자기들이 묵고 있는 위층
방으로 올라갔다.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안드레아,
필립보와 토마스, 바르톨로메오와 마태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열혈당원 시몬과
야고보의 아들 유다였다.그들은 모두, 여러
여자와 예수님의 어머니와 그분의 형제들과
함께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였다.”
(사도 1,12-14)
초대 교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사도들
임무는 무엇일까요? 당신 사도들은 신자들
봉헌한 모든 재산을 공동 관리하며
생활하였습니다.
오늘날의 수도생활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사도들을 따르는 제자들이 늘어나면서 공동
재산을 분해하며 살아가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증언자로서의 어머니”
인간의 역사를 하느님의 구원역사로 인식하였던
루카 복음사가의 신학적 관심은 다른
복음사가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과연 누구이신가? 바로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다’라는 것을 밝히고자 했습니다.
루카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밝히는 목격
증인들의 증언을 수집하고 정리하는데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처음부터 목격자로서 말씀의 종이 돈
이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것을 그대로
엮은 것입니다. 존귀하온 테오피로스님.
이 모든 일을 처음부터 자세히 살펴본
저도 귀하께 순서대로 적어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는 귀하께서 배우신 것들이 진실임을
알게 해 드리려는 것입니다.” (루카1,2-4)
루카 복음에서 성모 마리아는 예수님의
증언자로서 중요한 위치와 역할을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의 증언자이십니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은 단순한 추억거리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써
그리스도가 되신 것이 아닙니다.
요한 복음사가가 이해한
성모 마리아
“믿음으로 기적을 이루신 어머니”
이제 요한 복음에서 소개되는 성모님의 모습을
살펴봅니다.우선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성모님의
동정을 통하여 여느 사람들의 출생과 다르게
하느님으로부터 태어나신 것을 암시하는 구절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요한 1,13-14)
요한 복음에서 성모님의 공적으로 처음 등장하는
곳으 카나의 혼인잔치입니다. 다른 복음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귀한 자료입니다.
“사흘째 되는 날, 갈릴레이 카나에서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에 계셨다.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그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으셨다. 그런데
포도주 떨어지자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하였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요한2,1-11)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한 기적은
예수님이 첫 번째로 행한 기적을 알려져
있습니다. 이 첫 번째의 기적은 누구의 믿음
때문에 이루어진 것입니까?
바로 성모 마리마의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없는 곳에서는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다고 복음은 전하고 있습니다.
“사랑받는 제자의 어머니”
요한 복음에서 성모님이 두 번째로 등장하는 대목은
사랑받는 제자와 함께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 계신
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였다.
‘여인이시여,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요한 19,25-27)
성경에 따르면,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성모님을 모신
사람은 예수님의 형제들이 아니라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암시하는 대목들이 있습니다.“여자들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에는 마리아
막달fp나, 작은 야고보와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가 있었다.”(마르 15,40) 이들은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 있을 때 그분을 따르며 시중을 들던
여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활동할 때 남성 제자들뿐 아니라
여성들도 함께 뒤를 따랐던 것입니다.
묵시록에서 드러나는 성모 마리아
“교회의 상징인 어머니”
요한 묵시록 12장에는 ‘여인과 용’이라는 제목으로
성모님과 관련된 내용이 나옵니다.
창세기 3장15절에서도 성모님을 상징하는 여인이
뱀과 싸우는 모습이 나옵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성경 첫 권과 마지막 권에
성모 마리아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우연만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묵시록 12장은
8월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때 독서로 읽혀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이 내용이 성모님과 관련된 것이라고 보는
까닭입니다.
“하늘에 큰 표징 나타났습니다.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 여인은 아기를 배고 있었는데, 해산의 진통과
괴로움으로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표징이
하늘에 나타났습니다.
크고 붉은 용인데,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열
이였으며 일곱 머리에는 모두 작은 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용의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휩쓸어 땅으로
내던졌습니다. 그 용은 여인이 해산하기만 하면
아이를 삼켜 버리려고, 이제 막 해산하려는 그
여인 앞에 지켜 서 있었습니다.
이윽고 여인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사내아이는 쇠 지팡이로 모든 민족들을 다스릴
분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의 아이가 하느님께로, 그분의 어좌로
들어 올려 졌습니다.
여인은 광야로 달아났습니다.
거기에는 여인이 천이백육십 일 동안 보살핌을
받도록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처소가
있었습니다. 그때에 하늘에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미카엘과 그의 천사들의 용과 싸운 것입니다. 용과
그의 부하들도 맞서 싸웠지만 당해 내지 못하여,
하늘에는 더 이상 그들을 위한 자리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큰 용, 그 옛날의 뱀. 악마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자, 온 세계를 속이던 그자가
떨어졌습니다.
그가 땅으로 떨어졌습니다. 그의 부하들도 그와 함께
떨어졌습니다.
그때에 나는 하늘에서 큰 목소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제 우리 하느님의 구원과 권능과 나라와 그분께서
세우신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다.
우리 형제들을 고발하던 자, 하느님 앞에서 밤낮으로
그들을 고발하던 그자가 내 쫒겼다.
우리 형제들은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 그자를 이겨냈다.
그들은 죽기까지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늘과 그 안에서 사는 이들아,
즐거워하여라.
그러나 너희 땅과 바다는 불행하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달은 악마가 큰 분노를 품고서
너희에게 내려갔기 때문이다.
용은 자기가 땅으로 떨어진 것을 알고, 그
사내아이를 낳은 여인을 쫒아갔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에게 큰 독수리의 두 날개가
주어졌습니다.
그리하여 그 여인은 광야에 있는 자기 처소로
날아가, 그 뱀을 피하여 그곳에서 일 년과 이
년과 반 년동안 보살핌을 받았습니다.
그 뱀은 여인의 뒤에다 강물 같은 물을 입에서
뿜어내어 여인을 휩쓸어 버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땅이 여인을 도왔습니다. 땅은 입을 열어
용이 입에서 뿜어낸 강물을 마셔 버렸습니다.
그러자 용은 여인 때문에 분개하여, 여인의
나머지 후손들, 곧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님의 증언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과 싸우려고
그곳을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용은 바닷가 모래
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묵시 12,1-18)
묵시록 12장에 나오는 여인과 용의 대결은 교회가
악과 맞서 싸우는 것을 의미하는 묵시문학적
표현입니다.
묵시문학은 기원전 200년경부터 기원전 100년경까지
이스라엘 백성과 그리스도 신앙인들에게 새롭게
희망을 주던 새로운 문학 장르였습니다.
그러나 용과 싸우는 여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고통에 함께 하는, 교회의 모델이 되는 성모
마리아를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셋째로 여인의 모성과 십자가의 수난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결국 교회의 모성과 성모 마리아의 모성이 서로 깊이
연관되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가톨릭교회는 이러한
연관성 때문에 전례 안에서 이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근거한
가톨릭교회의 성모 공경
“교회은 지극히 복되신 동정녀 안에서 이미
완덕에 이르러 어떠한 티나 주름도 없이 서
있지만 (에페5,27 참조), 그리스도 신자들은
아직도 죄를 극복하고 성덕 안에서 자라나도록
노력하고 있다.
마리아께서는 실제로 구원의 역사 속으로 가장
깊이 들어가시어 신앙의 최고 진리를 어느 모로
당신과 결합시키고 반영하시므로, 찬미와
공경을 받으실 때에 당신 아들과 그 희생으로 또
성부의 사랑으로 신자들을 부르신다. (...)
그 모성애로 교회의 사도직 사명 안에서 사람들이
새로 나도록 협력하는 모든 이가 활력을
찾아야.”한다.(교회헌장,65항)
성경이 성모 마리아에 관해 진술하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마리아는 혈연적으로 예수님의
어머니이십니다.
마리아는 사람이 되신 성자의 인성의 근거가
됩니다.(마태 1,16;루카2,7)
둘째, 마리아는 믿음으로도 예수님의
어머니이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따랐기 때문입니다. (마르3,35;
마태12,50; 루카8,21)
섯째, 마리아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예수님의 형제자매들에게도
어머니이십니다.(요한19,27)
넷째, 마리아가 복되신 이유는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신 믿음에 있습니다.(루카 1,45)
다섯째, 마리아가 예수님을 동정으로 잉태하고
출산하신 것은 성자의 신성을 드러내는 데 중요한
관련성을 지닙니다.(마태 1,20;루카 1,35)
여섯째, 마리아는 하느님의 틀림없는 선택에 의해
어머니로 섭리되신 분입니다. 이미 예언자들을
통해 점지된 분이심을 알려줍니다.(창세 3,15;이사
7,14;미카 1,24).
일곱째, 성모 마리아는 ‘은총이 가득하신 분’(루카
1,28),‘주님이 함께 하시는 분’(루카 1,28), ‘하느님
사랑을 충만하게 받은 분’(루카 1,30)이십니다.
성경에 분명하게 나오는 내용입니다.
따라서 ‘성경만으로’를 주장하는
프로테스탄트들이 성모송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근거는 없습니다.
오히려 성모송을 바치지 않는 그들이 이상한
일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성모님께서 초기 교회
공동체로부터 공경 받고 있었다는 사실이
명확합니다.
그러므로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이 왜 성모님
공경을 거부하는지 오히려 질문하고 싶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함께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