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러시어어권의 이해 7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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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현대 러시어어권의 이해 7조

키르기스스탄의 혁명
201520268 장보경
201520270 정윤선
201520271 정호윤
201520272 조윤경
201520274 최성혁
201520276 홍서영
국가개요
1,2차혁명 발발원인과 과
2차혁명의 정치.경제적 변
주변국의 상황과 키르기스
전망
*국기
*지도
*개요
국가개요와 1차혁명
• 키르기스스탄은 중앙아시아 북부에 있는
내륙국으로, 1864년 제정러시아에 정복되
었다. 러시아혁명 후 소비에트 투르키스탄
공화국의 일부가 되었고 1926년 키르기스
자치공화국, 1936년 키르기스스탄공화국
을 거쳐 1991년에 독립하였다. 산악 국가
이며 고산기후가 나타나지만 해발고도와 사
면의 방향에 따라 다양하다. 천연자원으로는 수
은 ,아티모니의 최대 생산국이며, 금, 주석, 우라
늄, 보크사이트, 동, 철, 아연, 텅스텐, 중정석, 형
석, 흑연, 마그네사이트, 염, 활석, 건자재등 광물
및 비철금속을 다량 보유하고 있으며, 석탄, 가스
원유등도 매장되어 있는 걸로 알려져있다. 특히,
키르기스스탄은 인구 약 530만 명, 면적 약 20만
㎢로 남한의 약 2배에 불과한 작은 국가이지만 다
튤립혁명
<튤립혁명이란>
• 중앙아시아 북부에 있는 키르기스스탄에서
2005년 3월 발생한 반정부운동이다. 튤립 혁명
(Tulip Revolution) 또는 제1차 키르기스 혁명
(First Kyrgyz Revolution)은 2005년 2월 27일
과 3월 13일 두 번에 걸쳐서 행해진 키르기스스
탄의 의회 선거 이후 일어난 사건이다. 키르기스
스탄 북부 산악지역에서 자생하는 야생 튤립을
혁명의 상징으로 내걸어 튤립혁명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시위군중이 레몬색을 상징색으로 택
하여 레몬혁명, 또는 튤립 색깔 중 하나인 핑크
색을 따서 핑크혁명으로 이라고도 한다.
<제2차 튤립혁명 발발 원인>
• 반정부시위를 주도한 인민행동당(PMK)의 당수
쿠르만베크 바키예프(Kurmanbek Saliyevich
Bakiyev)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지만 아카
예프를 권좌에서 몰아낸 주역이었던 바키예프
대통령 역시 정치안정화와 경제개혁에 실패하
고, 정부 요직에 아들과 친인척 등을 앉히는 등
정실인사·부정부패, 야당과 언론탄압 등의 비민
주적 통치를 행하자 2010년 4월 다시 거센 국
민들의 저항을 불러일으켰는데 이를 제2의 튤
립혁명이라 부른다.
• 특히 전기료와 가스요금을 5배 인상하면서 민
심이 폭발하였고, 이 혁명은 2010년 4월 7일
대규모 시위대가 주요 관공서 장악을 시도하는
것으로 시작이 되는데요. 이 과정에서 정부는
• 2005년 당시 바키예프와 함께 튤립혁명을 주도
하였던 전 외무장관 로자 오툰바예바(Roza
Otunbayeva)를 대통령으로 지지하였고 투표 결
과 로자 오툰바예바(Roza Otunbayeva) 가 대통
<촉발의 원인과 결과>
• 1991년 구 소련 연방으로부터 분리·독립한 나라 중 조지아(2003년
장미혁명), 우크라이나(2004년 오렌지혁명)에 이은 키르기스스탄의
민주화 운동인 튤립혁명은 1991년부터 14년간 장기 집권한 아스카
르 아카예프 (Askar Akayev) 정권의 부정선거로 인하여 촉발되었다
• 키르기스스탄 과학아카미 원장이었던 아카예프 (Askar Akayev)는
물리학자 겸 교수 출신으로 1990년 간접선거로 대통령에 선출된 뒤
15년간 장기 집권했다. 91년 독립과 함께 실시된 직접선거에서 압도
적인 지지로 유임된 뒤 95년 재선, 2000년 3선에 성공한 것이다. 집
권 초기에는 중앙아시아 지도자 중 가장 진보적이며 개혁적인 인물로
꼽혔다. 하지만 장기집권과 경제정책의 실패, 그리고 2005년 2월과
3월 두 차례에 걸친 총선 부정선거에 따른 시민들의 불만 표출이 시
작되었다.
• 2월 27일 1차 총선과 3월 13일 2차 결선투표가 진행되었고, 총선 결
과 여당이 여당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어 75석 의석 중 59석 을 차
지하고 야당 의석은 6석에 그친다는 선거관리위원회의 공식선언이 3
월 14일 발표되었다. 더욱이 선거에서 아카예프 대통령의 32세인 딸
과 29세인 아들이 의회 진출에 성공하자,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
은 극에 달하였다. 야당과 국제 선거감시단은 불법적인 투표권 매수
와 언론매체 조작 등 전국적으로 광범위한 선거부정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이 선거에서 매표·흑색선전·언론조작 등 광범위한
<제 1,2차 튤립혁명의 의의>
• 앞에서 말했듯이 키르기즈스탄은 굉장히 작은 국가이다. 하지만 이 작은
국가에서 발생한 혁명이 세계적인 관심을 끈 이유는 구소련 권에서
발생한 부패와 권위주의로 물든 체제가 키르기스스탄의 혁명 이후에
본격적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 즉, 1990년대 붕괴된 구소련체제 이후 대부분의 국가들은 권위주의적
체제를 10년이상 겪었는데, 이러한 체제는 민중혁명인 2003년 11월
그루지야 ‘장미혁명’’과 2004년 11월 우크라이나 ‘오 렌지혁명’에 의해
와해되었다. 그러므로 연이어 일어난 2005년 3월 키르기즈스탄
‘레몬혁명’은 민중혁명이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계속될 수 있다는
연속성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것이다
• +사실 레몬혁명은 키르키즈스탄 스스로 이루어낸 것은 아니다.
레몬혁명의 발생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의 지원도 큰 몫을 했다.
• National DemocraticInstitute(NDI), Endowment for
Democracy(NED), Freedom House, Coalition for Democracy and
Civil Society(CDCS), European Network of Election Monitoring
Organization(ENEMO) 등의 NGO를 통한 막대한 자금투입이
없었더라면 혁명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 이러한 지원이 가능했던 이유는 체제변화기를 겪고 있는 구소련권
<과정>
• 2010년 4월 7일 대규모 시위대가 주요
관공서 장악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경찰
과 유혈충돌이 벌어져 1,000명이 넘는
사상자를 내는 등 사태가 악화되자 바
키예프는 자신의 정치적 근거지인 잘랄
아바트로 도망치며 반정부시위대에 쫒
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4월 8일
과도정부(임시정부)를 출범시킨 야당
은 2005년 당시 바키예프와 함께 튤립
혁명을 함께 주도하였던 전 외무장관
로자 오툰바예바(Roza Otunbayeva)
2.정치/경제적 변화
대통령의 권한보다는 의회와 사법부의 권한을 강화하고 권력 분산을 통해
민주주의의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바키예프 정부는 도리어
대통령의 권한을 더 강화하여 기대와 역행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국제사회에서는 집권 세력의 야당에 대한 억압적 태도와 언론 상황을 들어
키르기스스탄의 민주주의가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는 평가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2007년 12월에 있었던 키르기스스탄 의회 선거에서도 볼 수 있다.
1)2007년 키르키즈스탄의 경제성장 8.2%로 경제가 안정됨
2)건설업부분 성장률 700%상회
3) 군사적, 지정학적 요충지로 다른 CIS 국가들보다 상대적인 무역개방성
+한편, 혁명이후 시간이 흐른 뒤 2008년 경제성장률은 4.5~6%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어 그 속도가 저하되고 있는 것으로 경제 평가 기관들은 보고 있다. 그 저하
요인은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는데,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이 카자흐스탄
금융유동성 문제를 야기했으며, 카자흐스탄 금융자본이 키르기즈스탄 금융과
건설업 및 부동산에 크게 유입됐기때문에 키르기즈스탄도 그 영향을
직ㆍ간접적으로 받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그렇지만 가장 큰 요인으로는 고
인플레이션을 들 수 있다.
세계 경기분석기관들에 따르면 2008년 키르기즈스탄 CPI(Consumer Price
Index)는20~24%로 예상하고 있으며, 주요인은 식료품비(25% 상승)와
최근 CIS(독립국가연합) 국가들의
관련 행보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로 독립한 10개 공화국의 연합체 혹은
동맹입니다.
투르크메니스탄은 2005년 8월 26일 탈퇴 후에 준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루지야는 원래 회원국이였으나, 2008년에 러시아와
짧은 전쟁을 치른 후에 탈퇴를 선언했습니다.
○ 회원국
러시아 (1991) 몰도바 (1991) 벨라루스 (1991) 아르메니아
(1991) 아제르바이잔 (1991) - 1992년에 탈퇴했으나
재가입 우즈베키스탄 (1991) 우크라이나 (1991) 카자흐스탄
(1991) 키르기스스탄 (1991) 타지키스탄 (1991)
○ 준회원국
투르크메니스탄 -1991년 가입, 2005년 탈퇴. 그 후로 준회원국
○ 탈퇴국
그루지야 -1993년 가입, 2008년 탈퇴
마나스 공항기지 폐쇄조치를 내린 표면적인 이유는 미국과 이란이
전쟁을 벌일 경우 끼어드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지만, 자국 내
주요국과의 외교상황과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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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주요국 강대국으로서는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중국이 있습니다. 이들 모두 이번 사태에 긴
장과 주목을 하고 있습니다.
○ 미국
미국은 2001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할 때부터 키르기스의 마나스 공항에 공군기지를 운영해왔
습니다. 현재 미국은 키르기스에 매년 6300만달러의 고액 임대료를 지불하면서 마나스 기지를 존
속시키려 애쓰고 있는 상황입니다.
바키에프 대통령은 마나스 기지 폐쇄 위협을 통해 연 1700만달러에서 6천만달러로 임대료를 올
리는 데 미,러의 경쟁관계를 이용하여 긴장감을 고조시키기도 했습니다.
미군이 임대한 마나스 공군기지는 아프간전쟁을 수행하는 데 있어 이 지역에서 대안을 찾기 힘든
중요한 병참기지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2008년 아프간전과 관련해 3300회의 공중 급유 활동을
했고, 연인원 170,000명의 이동과 5,000t의 물자수송이 이뤄졌습니다. 이곳이 막힐 경우 앞으로
미국의 아프간전 수행은 차질이 불가피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 러시아
러시아는 2003년 소련 붕괴 후 첫 해외 군사기지로 키르기스에 칸트 기지를 세웠습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지정학적 최우선 지역은 아니지만, 중요성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중국과 인접해 중국
의 움직임을 견제할 수 있고, 우즈베키스탄의 인구밀집지역을 감싸 안고 있을 뿐 아니라 카자흐의
일부라고 할 만큼 카자흐스탄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는 위치를 점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
에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의 기지를 포함해 4개의 공군기지를 유지하고 있고, 우즈베키스탄에
가까운 오슈에 또 다른 기지를 건설하는 군사협력 관계를 확대해 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키르
기스에 대해 매년 20억달러의 경제지원을 하고 수력발전소 건설 등을 약속한 러시아는 키르기스
스탄의 미,러시아의 경쟁관계를 이용한 외교 전략의 이중적 태도에 못 마땅해 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됩니다.
일단, 러시아의 푸틴 총리는 이날 러시아 언론매체들과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태는 너무도
불시에 닥친 일로 러시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면서 일부에서 제기된 러시아 개입설을 강력히
부인했습니다.푸틴 총리의 이런 발언은 몇몇 키르기스 야당 지도자들이 푸틴 총리가 자신들을 지
지하고 있다고 주장한 데 대한 반박으로 풀이됩니다.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은 키르기스
국내 문제'라고 선을 그으면서 '내가 요구하는 것은 키르기스 당국과 야당이 자제력을 발휘해 폭
• 미국과 러시아가 모두 공군기지를 운용하고 있는 것을 살펴
보더라도 키르기스의 지정학적 위치는 중앙아시아에서 독
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 현재 미·러 양국은 각각 우려의 성명을 내고 상황을 예의주
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키르기스 정부의 외교 방향에 따
라 미·러 양국의 군사기지의 존속 및 철수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미 시사주간 타임에 따르면 2090년 2월경 러시
아가 키르기스에 20억달러의 자금 대출과 1억5000만달러
를 지원하자, 키르기스 정부는 미국 측에 마나스 공군기지
를 폐쇄하겠다며 통보를 하다가 결국 임대료를 3배 올려 받
는 선에서 미국과 협상을 끝냈답니다. 이후, 러시아와 바키
예프 정부의 사이가 악화됐고, 러시아가 친러시아 성향의
야당을 지원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으나, 러시아는 개입
설을 극구 부인했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
이번 사태는 불시에 닥친 일로 러시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툰바예바는 8일 푸틴과
한국대사관 상황
• 아직까지 한국 교민들의 별다른 피해 사례는 전해
지지 않고 있습니다. 키르기스스탄은 '한- 키르기
스스탄 투자정보협정'에 따라 중앙아시아에서 외
국기업이 활동하는데 좋은 나라로 교민사업가들이
활발한 사업을 펼쳐왔습니다. 다만 이번 사태로 인
해 향후 새로운 정부의 정책에 따른 변화로 우리
교민 기업들의 피해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
• 비상근무 체제에 돌입한 한국대사관은 8일 비자발
급 작업을 중단한 뒤 키르기스스탄 주재 한인들의
안전 보호 조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습
니다.
• 한국대사관의 엄기영 영사는 유혈사태가 벌어진
수도 비슈케크는 경찰력이 완전히 붕괴된 가운데
키르기스스탄 사태 정리
전망
• 2005년 튤립혁명(튤립전쟁)으로 물러난 '아카예브' 전대
통령은 현재 머물고 있는 모스크바에서 이번사태를 전해
들으며 '이번시위는지난 튤립 혁명때보다 군중의 행동이
더욱 과격하다 가볍게 끝나지만은 않을 것이다'이라고 전
해집니다.
• 이렇게, 외부 언론의 우려섞인 보도와 주변국가의 긴장
된 모습을 연일 쏟아내고 있지만, 실제로 키르기스스탄
의 국내 정치 상황이 최악의 어지러운 상황까지 갈 것 같
지는 않습니다. 이번 4월 사태는 단순히 독재자와 부정부
패를 척결하기 위한 혁명으로 기록 될 것이며, 민주주의
와 시장경제 체제를 바꾸려는 의지로는 보여지지 않습니
다.
• 하지만, 우려되는 것 중 중요한 한가지는 이번 시위로 인
해 키르기즈스탄 전통 박물관 '가파르아이티 예브'도 온
전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유물이 현재 얼마나 남아 있
는지 파악이 되지 않고 있고, 없어진 대부분의 유물이 역
사적 가치를 지니는 것들이라 피해 규모가 엄청날 것으
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이제 키르기스스탄 국민들이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