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 정화와 하느님과의 합일 십자가 성 요한의 영성 3 정화에는 이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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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영의 정화와 하느님과의 합일 십자가 성 요한의 영성 3 정화에는 이 밤

십자가 성 요한의 영성 3
영의 정화와 하느님과의 합일
영의 정화(淨化)
• 정화에는 이 밤들을 통해 행해지는 정화 외에도
또 다른 정화가
있다. 즉 고백성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정화이다.
그러나 이 둘
사이에는 분명히 차이점이 있다. 그 차이점이란 고
백성사에 의한
정화는 하느님의 은혜에 의해 죄들을 깨끗이 정화
시키는데 반해
어두운 밤으로 표현되는 이 정화는 이미 의인이 된
영혼들에게만 작용
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사로서의 정화는 고통이 따
르지 않지만 영의
나아간 이들의 불완전
• 영혼은 이 같은 불완전이 영의 수동적 정화를 통해 제
거되지 않는 한
영혼은 결코 하느님과의 합일에 이르지 못한다. 그러
므로 하느님은
하나의 순수하고 어두운 관상을 통해 또다시 영혼 안
에 역사 하실
필요가 있다. 이 정화는 감각의 정화와는 달라 “그 무
시무시하고
놀라움이야말로 어디다 비길 수가 없다.”하느님께서는
묵은 인간을
이들에게서 실제로 벗기시고자 아울러 (사도가 말씀한
대로) 새인간,
즉 새로운 감각을 가지고 하느님께 창조된 인간을 만
비유를 통한 밤의 의미
• 영의 정화에 대한 이 비유를 통해 다음과 같은 사
실을 알 수 있다.
첫째, 하느님께서 영의 수동적 정화를 위해 영혼에
게 사랑의 불을
놓아주시면 영혼은 자신 안에 있던 불순물이 정화
되어 타버리는 데서
커다란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나무
가 고약한 냄새를
내고 요란한 소리를 내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 고
통의 원인은
하느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있는 것이
다 왜냐하면
• 둘째, 이 정화의 목적이 영혼의 불순물을 모두 제
거하여 사랑의 불로
변화시키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이는 영혼의 불순
물과 더러움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는 한 결코 완성에 이를 수 없다는 것
을 의미한다.
셋째, 이 불로 인해서 영혼은 자신의 불완전과 더
러움을 보다 확실히
알게 된다는 것이다. 불이 나무에 붙어 깊숙이 배
어 있는 습기와
진들이 드러나는 것을 보고서야 영혼은 비로소 자
• 넷째, 나무가 외부에서 내부로 타 들어가듯이 영혼도
감각적인
부분에서 시작하여 보다 영적이고 은밀한 부분으로 단
계적으로 정화되어
간다는 것이다. 동시에 영혼이 느끼는 고통도 점점 커
져 간다.
다섯째, 나무가 타 들어감으로써 점차 불길이 거세지
는 것처럼,
영혼은 정화가 진행되어감에 따라 고통 속에서도 오히
려 하느님을 향한
사랑이 더욱 치열해져 가고 더욱 불타게 된다는 것이
다.
정화(淨化)의 시련(試鍊)과 고통(苦痛)
• 십자가 성 요한에 의하면 영의 수동적 밤은 영혼
에 끼치는 하느님의
한 작용으로 영혼을 그 자연적 및 영성적 무지와
불완전에서
정화시키는 것이다. 하느님은 주부적 관상으로 영
혼 안에 은밀하게
작용하심으로써 전적이고 완전한 정화의 순결을
위해 영혼을 상처내며
나쁜 습관과 불완전을 불살라 버리신다. 이는 하느
님께서 영혼으로
하여금 변화와 사랑을 통해 당신과의 신적일치를
이루게 하려는 준비
• 영혼이 여기서 당하는 고통은 두 가지 극단에서
오는 것으로 이는 곧
여기서 결합되는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그것이다.
신적인 극단이란
영혼을 변화시켜 신스럽게 만들기 위하여 점령하
고는 영혼이 일체가
되다시피 밀착해 있는 묵은 인간의 본성과 애집을
벗겨낸다. 여기서 가장 사무치게 영혼이 아파하는
바는 하느님께서 자기를 미워하셔서
어둠 속에다 집어 던지셨으니 분명 버리셨다고 믿
는 생각인데
하느님께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
• 여기에 영혼을 크게 슬프게 아프게 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이 어둔
밤이 영혼의 능력과 애착을 묶어놓은 만큼, 그 정
과 마음을 하느님께
들어올릴 수가 없고 빌 수조차 없는 그것이다. 영
혼은 수동인 채
하느님께서 그 안에서 일을 하시므로 영혼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것…기도도 못하고 의식적으로
하느님의 일에 참여하지도 못하며 그 밖의
세상 일 같은 것은 더구나 그렇다. 이뿐 아니라 대
개의 경우 실신
상태와 기억상실에 빠져서 무얼 했고 무얼 생각했
사랑의 시기
• 영의 수동적 정화가 가져오는 다양한 고통들은 대
단히 부정적인 인상을
줄 수도 있겠으나, 사실 이 고통들은 하느님만을
사랑하도록 하는
하느님의 ‘맛떼기’방법이다. 즉 영혼으로 하여금
세상의 모든
위로에서 벗어나게 하고, 그러므로 오직 하느님만
을 사랑하게 하는
것이다. 하느님과 피조물은 동시에 섬길 수 없는
것이고, 따라서
양자택일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영혼은 이 영스러운 타오름이 사랑의 열정을 일으
• 여기서 하느님은 영혼의 모든 힘과 능력과 욕구를
-영적 감각적인 것을
막론하고-거두셔서 그 힘과 능력을 이 사랑에 맞춰
나가게 하시고,
그리하여 첫째 계명을 철저히 지키게 하시는 것이
니 그 첫째 계명은
인간과 그에 딸린 것을 하느님 사랑에서 조금도 거
부하거나 배제함이
없이 말하는 것이다.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희 하느님 야훼를 사랑하여라”(신명 6,
5).
• 하느님을 향한 불타는 사랑으로 영혼은 정화의 밤
을 견디어 나가고
하느님을 향해 한 발짝씩 전진한다. 이러한 상황에
서 영혼의
길잡이가 되는 것은 ‘믿음의 빛’이다. 그것은 하느
님께로 이끌어주는
가장 안전하고 단 하나밖에 없는 길이다. 토마스아
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는 “신앙의
효과는 또한 마음의 정화이다.
왜냐하면 만일 불순함이 더 하위의 것들과의 혼합
이라면 정화는
그 반대가 될 것이고, 따라서 하느님과의 일치에로
하느님과의 합일(合一)
• 수동적 정화의 시기는 고통과 번민의 시기였다. 이 정
화의 시기를 거친
후 그 영혼에게 주어지는 결실은 어떤가는 중요한 문
제인 듯 싶다.
정화의 결실로 얻어지는 하느님과의 합일은 너무도 풍
요롭고 찬란하다.
이 찬란하고 풍요로움을 십자가 성 요한은 이렇게 표
현하고 있다.
“아! 자기의 품속에 하느님이 쉬시고 피로를 푸시고 계
시는 것을
항상 느끼고 있는 영혼은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아! 극
히 작은 오점도
아주 미약한 소음도 사랑하는 님의 품을 시끄럽게 동
요시키는 일이
없도록 사물들에게 멀리하고 잡무들에서 피해 광대무
• 현세에서도 도달할 수 있는 이 지극히 높은 생활
에 대해 설명하고자
하는 데에도 충분한 이유가 있다.
첫째 이유로는 우리를 기다리는 종국의 아름다움
을 앎으로 도중에서
만나는 어려움에 꺾이지 않고 용기와 힘으로 그곳
을 향해 가는 데
격려가 된다는 뜻이다.
둘째 이유는 하느님과의 합일 상태와 그 상태로 가
게 하는 관상
생활과의 사이에 어떤 ‘계속성’이 존재하고 있음을
더욱 뚜렷이
• 하느님과의 합일을 다룰 때 신비가 들이 즐겨 사
용한 결혼에 관한
말을 성 요한도 인용하여 첫째 것을 ‘영적 약혼’ 둘
째 것을
‘영적 혼인’이라 부르고 있다. 그다지 상징적이 아
닌 말로 한다면
첫째 것을 ‘의지의 합일’, 둘째 것을 ‘완전한 합일’
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명칭은 하느님과의 합일에 이르는 두 단계
에 관하여 설명할
때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의지의 합일
• 첫 단계의 특징은 “영혼이 의지로써 하느님께 완
전한 ‘네’라고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예수의 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에서도
나타난다.
“하느님께서 우리 의지를 꺾지 아니하시고 우리가
당신께 드리는
것만을 받아들이시고 온통 우리를 당신께 바치기
전에는 온통 당신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십니다.”
이 점에 대한 십자가 성 요한의 생각이 다만 천재
적 직관일뿐
아니라 신학적 논증도 주고 있다. 즉 그 가르침의
• 성 요한은 [사랑의 산 불꽃] 안에서 다음과 같이
그것을 아름답게
표현하였다.
“그 때 하느님의 의지와 우리 의지는 저절로 어울
려 하나가 되어
우리는 의지로써 하느님을 파악하고, 이 의지와 은
총을 통해서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소유합니다. 말하자면 우리 승낙에
대해서 하느님도
또한 은총과 진실, 그리고 온전한 승낙으로 응답하
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과의 합일의 첫 단계의 특징은 사
완전한 합일
• 성인은 ‘영적 혼인’의 합일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
였다. 그것은
“사랑해 주시는 분 안에서의 온전한 변화이며, 그
안에서 쌍방이
자신을 온전히 상대에게 서로 내어주고, 사랑의 합
일이 완성되는
것이다.”
대 데레사는 이 완전한 합일에 대해 이렇게 이런
비유로 말하고
있다. “영적 결혼은 하늘에서 강이나 우물로 떨어
지는 물과 같이
똑같은 물이 되어버려서, 강물과 떨어진 물을 나눌
수도 따로 갈라놓을
• 이 영적 혼인은 영혼이 영적 약혼 상태에서 이미
도달했던 단순한
의지의 합일이 아니라, 이제는 감각을 표현한 모든
능력들을 하느님
안에 흡수시키고 일치시키는 전적인 합일이다. 이
합일을 가능하게
하신 분은 분명 성령이시다. 성령께서는 이제 영혼
안에 당신의
특별한 선물들을 가득 부어주시고, 이 성령의 선물
들은 마치 시원한
강풍이 항해를 쉽게 하고 빠르게 하듯이 모든 덕들
의 실천을 하고
• 첫 번째 차이점은, 대신덕의 합일은 영혼의 걸음걸이
에 따라서,
말하자면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데 반해서 영적 혼인
의 합일은
하느님의 걸음걸이에 순응하는 것으로서, 말하자면 이
합일이 한 번에
다 이루어지는 것이다.
두 번째 차이점은, 외견상으로 드러난 뚜렷한 근거들
로, 또 뚜렷한
순간들로써, 영적 혼인의 결합은 거의 확인될 수 있다
는 점이다.
실존과 비교하면 사람들이 말할 수 있는 것이 거의 무
(無)라고 밖에
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영혼이 이 영적 혼인이라는 합
• 또한 영혼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정배이신 하느
님의 신비들에 대한
깊은 인식을 갖게 된다. 또 영혼은 자신이 하느님
의 삼위일체적
생명을 누림을 느끼게 된다. 더불어 영혼은 자신의
감각들을 자신의
이성으로써 완전히 지배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다
음과 같은 사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영혼이 영적 혼인의 단계에
서 누리는 모든 영적
체험들은 영혼 안에서, 그런 체험들이 완전해 질
수 있는 유일한
맺음말
• 십자가의 성 요한은 하나의 길을 제시해주고 있으
며 그 길에 서있는
사람들에게 그 길에 들어서서 걸어가길 바라고 있
다.
이것은 하느님께 전적인 의탁을 하면서 나아가는
길이다. 그 길은
정화의 길이며 사랑의 길이다.
십자가의 성 요한에게 있어서 정화란 단순히 죄와
욕으로 씻어내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원래 하느님
의 모상으로 창조
되었기에, 인간은 하느님과의 합일을 이룰 수 있도
• 정화라는 단어가 풍기는 인상은, 엄격하고 부정적
으로 느낌이 다가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 ‘비움’, ‘부정’을 강조하
는
십자가 성 요한의 가르침은 영혼을 하느님과의 사
랑으로 결합케 하고
사랑의 완성으로 이끌어 주는 절대적이며 긍정적
인 가치를 제시하는
것이다.
우리의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
서 자신을 전적으로
비우시고 내어놓으신 그 위대한 사랑의 사건으로
전부가 되신 것처럼,
• 그런데 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 하나가
있다. 그것은
모든 이가 계속해서 어둠의 상태로 뛰어드는 것은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간헐적으로 어둠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처음으로 어둠 안에 들어선 이는 정화의 과정을 거
치는 시기에 능동적
이고 고행 적일 때는 대개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선
의를 갖는 반면
정화가 수동적일때는 대개가 부정적이거나 거부
하는 자세들을 가진다.
바로 여기에 하느님의 작용이 필요하며 하느님의
은총 없이는 정화를
• 어둠을 처음 겪는 이에게는 이 어둠이 고통이고
혼돈이고 아픔이다.
그렇지만 절대적인 하느님께 대한 신뢰와 전적인
믿음 안에서
이 고통의 시기가 결코 고통의 시기가 아님을 알게
된 이는 이 어둠이
지난 후, 비록 그 사람이 하느님과의 합일에 도달
하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자신이 얼마나 성숙되었고, 그리고 하느
님께 얼마나 깊은
사랑을 받고 있었는지 알게 된다. 그러면서 또 다
시 하느님의 사랑의
•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인간적인 즐거움이나,
의향들을 하느님을 사랑
하기 위해서 포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
의 사랑을 위하여
모든 것들 안에서 하느님을 선택해야 한다. 이것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자신의 모든 능
력이나 재능들을 신,
망, 애의 삼덕을 통해서 하느님과 보다 깊이 일치
시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비워야 한다는 것과 같다. 바로
여기에 십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