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탈리즘[orient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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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탈리즘[orientalism]
영문과 박슬기(200530053)
이민정(200530067)
오리엔탈리즘의 정의
낭만주의의 한 경향인 이국취미(異國趣味)를 대표하는 것으로 오리엔트, 즉
동방세계에 대한 동경을 표현상의 동기 또는 제재(題材)로 삼은 것이다. 이러
한 풍조는 아주 막연한 것이었으나 18세기경부터 유럽 각지의 상류계급 사이
에 유행하여 시누아즈리(chinoiserie:중국취미)·튀르크리(turquerie:터키취미)
등이라고 하여 미술이나 음악의 주제로 삼게 되었다.
19세기에 들어와 동방과의 교류가 빈번해짐에 따라 작가 자신이 동방의 나라
들을 여행하여 직접 그 풍토와 풍속에 접하여 그들의 표현영역을 확대하는 경
향이 커졌다. 이는 동시에 작가들의 직접 체험을 통하여 유럽과는 전혀 다른
정신세계에 눈을 뜨게 한 것을 의미하며 오리엔탈리즘은 일부 낭만주의자들
의 독점물은 아니었다.
문예상에서 오리엔탈리즘이라고 하면 용어에 내포된 '오리엔트'의 개념, 즉
고고학(考古學)이나 역사학상의 '오리엔트'와 같이 분명한 것은 아니고 극동
지방이나 아프리카 북부까지도 포함한 동방세계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 통례
이다.
오리엔탈리즘의 형성 배경
쉽게 말해 ‘오리엔탈리즘’이란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며 위압하기 위한 서양의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 열강이 세계로 진출해 식민지 건설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동양은 열등하고 수동적이며 분열적인 존재로써 서구사회에 있어서
‘타자(他者)’1)로 설정되었고 이러한 ‘타자설정’ 자체부터 서구의 정체성을 견고히
하는 도구로 쓰여왔다. 열등한 동양에 대한 우등한 서양이라는 개념으로부터 출발한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에 대한 서양의 주도권을 주장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는
마치 과거 일제가 우리 나라의 산업화와 발전을 위해 조선을 식민지화하였다는
논리와 일맥상통한다. 다시 말하면, ‘오리엔탈리즘’은 미개한 동양의 개척자로서의
유럽이라는 정당성을 마련하기 위한 식민정책의 일환이었다. 즉, 그들의 침략을
문화의 전파를 위한 진출로 정당화 시켜 줄 수 있는 담론인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은
분 명 한 지 리 적 폭 력 으 로 ' 이 쪽 ․ 우 리 ( 서 양 )' 와 ' 저 쪽 ․ 그 들 ( 동 양 )' 사 이 에
인식론적이자 존재론적인 지리학상의 경계를 설정하고, 전자의 특권적인
장으로부터 후자를 일정한 담론 질서 속에 가두려고 한 것이다. 다시 말해
오리엔탈리즘이란 제국주의 시대부터 동양에 대한 서양의 우월, 구원, 구제, 지배,
착취를 합리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1)자신의 입장에 대해 옳고 그름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이전에 미리 자신의 입장을 참으로 규정하고 이와 대치되는 개념을 거짓으로
규정하는 태도. 기준설정 후 현상에 대한 가치부여가 되지 않고 가치규정 후 그에 맞는 기준설정 하는 특성이 있음. 기준이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편향성을 띠게 됨.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비판
 서양이 지금껏 바라본 동양은 동양이 아니라 서양의 눈으로 본 동양이었다.
 이런 비판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에서 제기되었다.
 그는 ‘오리엔탈리즘이란 서양인의 경험 속에서 동양의 특수한 위치에 근거
하여 동양에 관계하는 방식’ 이며 그 목적은 ‘동양을 지배하고,재구성하며,
동양에 대해 권위를 행사하기 위한 서양의 스타일’ 로서 규정하였다.
 간단하게 보면 서양은 동양을 비하하거나 신비화 했다.그런데 신비한 동양
에 대한 탐구는 결코 동양의 문화와 문명,예술과 종교를 인정하고 이해하
기 위함이 아니다.
 그것을 소유하고 점령하며 지배하여 결국에는 동양의 정신과 문명을 서양
의 것으로 대체했다.동양을 비하하는 서양의 인식은 동양에 대한 서양의
지배를 합리화 하고 정당화 하는데 이용되었다.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에
대한 서양의 우월주의가 된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은 서양의 지리적 확장과
식민지주의,인종차별주의,자민족 중심주의와 결부되어 지배의 양식으로
대두한다. 뿐만 아니라 동양에 대한 서양의 우월주의는 서양의 인식으로만
머물지 않는다.서양에 대한 동경과 문화와 문물,문명을 쫓으며 지향해야
할 목표로 설정하고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사대주의 서구중
심주의의 경향은 우리의 몸에 스며 들어있다. 동양 스스로가 오리엔탈리즘
을 내면화 하고 있는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의 해결과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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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탈리즘의 근본적인 처방은 서양의 서양우월주의 자체를 버리고 동양의 개성
과 전통을 찾아내는 적극적 노력을 하는 것이다. 더불어, ‘옥시덴탈리즘’이 오리엔
탈리즘의 변형된 모습이거나, 혹은 반대의 극단이 되는 균형 잃은 행동이지만, ‘옥시
덴탈리즘’도 전혀 배척할만한 일만은 아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오리엔탈리즘에
반발하여 ‘옥시덴탈리즘’을 내세우는 편협한 자세를 취해서는 안 되며, 동양과 서양
을 조화시켜야 된다고 한다. 하지만, 서양의 지배력이 이렇게 강력한 현실 속에서 양
쪽의 조화를 꾀하자는 목소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한 이유로 ‘옥시덴탈리즘’은 현실적으로 불가피하며, 부분적으로 필요하기도
하다. 전략적 의미에서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면서 그것을 넘어서는 길을 모색할 수
있다. 그리고 동양권의 지역적, 문화적 특성은 차별이 아닌 차이의 측면에서 오히려
적극적으로 개발(특성화)되어야 한다. 또한 동양권 나라가 가진 역사성의 차이를 고
려하여 공정한 경쟁과 협력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오리엔탈리즘’과 ‘옥
시덴탈리즘’은 현실적 입장에서 조화의 개념보다는 균형의 개념으로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오리엔탈리즘’과 ‘옥시덴탈리즘’의 문제점이 ‘상대방의 시각과 생각으로 서
로의 문화의 텍스트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할 때, 자신의 시각으로 자신의 것을 이해
할 수 있는 ‘정당한 인식틀을 갖추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이러한 과
정에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맹목적인 국수주의이다. 자문화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도 버려야 할 것이지만, 무조건적인 찬양과 우월주의는 오리엔탈리즘과 별 다를
바 없는 것으로, 지양해야 할 것이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 이 책은 과거 서구 유럽 사회에서 오리엔탈리즘이 형성되어온 과정과 역사
를 살피고, 그 속에서 철학적 주제와 정치적 논리를 분리해 이중적 관점에
서 오리엔탈리즘을 검토하고 있으며 , 근대 오리엔탈리즘의 발전 양상과
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오늘날의 오리엔탈리즘의 보편적 특징을 설명하
고 있다.
 사이드는 우선 푸코(M. P. Foucault, 1926~1984)에게서 ‘담론의 계보학’
이란 방법론을 빌려 왔다. 그가 보기에 오리엔탈리즘은 사실을 이론으로
정립한 것이 아니라 단지 담론일 따름이다. 오리엔탈리즘의 담론 체계가
형성된 과정을 보면, 오리엔탈리즘이란 동양을 지배하고 억압하기 위해 서
양이 재구성한 스타일일 뿐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 담론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리엔탈리즘은 기나긴 역사를 거
치며 서서히 형성되었다. 그래서 사이드는 근대 이전, 지역 간의 문화 교류
와 군사적 충돌에 관한 방대한 기록들에서부터 서구 중심적인 문화를 꼼꼼
하게 검토했다.
 고대 그리스 시대의 동양은 페르시아였다. 그리스는 페르시아와 전쟁을 치
르면서 동양에 대한 이미지를 극적 형태로 남겼다. 기원전 5세기 무렵에
상연된 것으로 알려진 아이스킬로스(Aeschylos, 기원전 525?~456)의 비
극 『페르시아 인』에는, 살라미스 해전에 참가한 페르시아의 황제 크세르
크세스 1세(Xerxes Ⅰ, 기원전 519?~465)를 ‘자만심이 너무 강한 나머지
신의 분노를 사 결국 전쟁에서 참패한 인물’로 그리고 있다. 그러면서 페르
시아를 공허하고 불행한 대상으로 언급했다.
 중세 시대로 넘어와도 동양 하면 이슬람 세력으로 통했다. 그런데 이 시기
에는 ‘친숙한 동양’과 ‘새로운 동양’의 개념으로 갈리기 시작했다. 헤로도
토스(Herodotos, 기원전 484(?)~430, 그리스의 역사가)와 알렉산드로스
대왕(Alexandros the Great, 기원전 356~323)이 방문하거나 정복한 지역
은 ‘레반트 제국’이라 불린 친숙한 동양이었다. 그리고 그 외의 지역은 새
로운 동양이었다. 이 시기에는 17세기 말까지 지속된 오스만 투르크 제국
(1299년부터 1922년까지 소아시아 아나톨리아 반도를 중심으로 형성된
투르크 족의 이슬람 국가)의 위협 때문에 서양인들은 이슬람 세력에 대해
경멸과 공포라는 이중적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 예를 들어 단테(Alighieri Dante, 1265~1321)는 『신곡』의 「지옥편」에
서 마호메트(Mahomet, 570?~632)를 중상모략을 일삼고 공동체를 분열시
키며 화근의 씨앗을 뿌린 악한 인물로 묘사했다. 그리고 동양을 묘사한 표
준적인 문헌으로 꼽히는 프랑스 동양학자 데르블로(B. d’Herbelot,
1625~1695)의 『동양 전서』에도 마호메트는 사기꾼으로 묘사되고 있는
데, 그에 대한 이런 식의 평가는 19세기 초반까지 이어졌다. 중세의 긴 역
사 속에서 유럽 인들에게 이슬람 문화와 과학에 대한 진지한 접근은 기대
할 수 없었고,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기까지 동양에 대한 이미지도 단편적
이고 일관성이 없었으며, 이질적 문화에 대한 거부감과 공포심이 항상 내
재되어 있었다고 사이드는 분석했다.
 그러다가 서양이 근대화에 성공하고 제국주의적 침략을 일삼으면서, 동양
에 대한 이해 방식에 체계가 잡히고 일관성이 부여되기 시작했다. 이 ‘서세
동점(西勢東漸)’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오리엔탈리즘이란 담론이 형성된 것
이다. 사이드는 이 시기를 주도한 영국과 프랑스의 동양에 대한 담론을 오
리엔탈리즘의 기원으로 보았다.
 사이드가 분석한 근대의 오리엔탈리즘은 서구의 근대 사회를 이끈 과학과
인문학에 녹아들면서 합리적으로 체계가 잡혀 갔다. 언어학, 고고학, 인류
학, 역사학 등의 학문은 서양인들이 동양의 역사와 사회를 이해하고 분석
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학문은 현실의 동양 사회를 객관
적으로 분석하기보다는 어디까지나 서양의 제국주의적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분석에 지나지 않았다.
 물론 이러한 표상의 체계도 서양의 정책과 세계 정세가 변함에 따라 점차
다양해졌다.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을 둘로 나누었는데, 동양 세계에 대한
변화된 지식을 ‘명백한 오리엔탈리즘(Manifest Orientalism)’으로, 동양 사
회에 대한 오래도록 고정된 ‘확신’을 ‘잠재적 오리엔탈리즘(Latent
Orientalism)’으로 구분했다. 이 가운데 동양에 대한 편견이 보편적으로 계
승되게 하는 힘은 잠재적 오리엔탈리즘에서 비롯된다. 사이드는, 서양 사
람들이 동양 사회의 후진성·퇴행성이야말로 오리엔탈리즘의 본질적 특징
이라 여기며 이를 다시 인종 차별의 성격을 띤 생물학적 근거와 연결시킨
면을 강하게 비판한다. 게다가 동양에 대한 편견은 윤리적·정치적 교훈으
로 재생산되어 동양과 서양 사회 모두에 각인되었다고 주장한다.

사이드는 서구 사회를 모방하든, 일부를 받아들이든 간에 그 안에는 여전히 오리엔
탈리즘의 오류가 담겨 있다고 경고한다. 많은 나라가 정치·경제·문화적 성공 모델로
유럽과 미국을 거론하지만 서구화나 근대화의 뒷면에 숨어 있는 유럽과 미국의 동양
에 대한 지배 욕구는 비 서구사회의 정체성과 상충될 수밖에 없다. 또 아직 정체성을
형성하지 못한 나라들은 오리엔탈리즘이 정체성 실현의 욕구 자체를 가로막는 경우
도 많다. 그래서 동양은 서양의 학문과 문화 전반에 걸쳐 스며 있는 ‘잠재적 오리엔
탈리즘’을 깨닫고 주체적인 해결책을 찾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바로 이
점이 동양 사회가 근대화나 서구화를 추구하기에 앞서 먼저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며
사이드는 강조하고 있다.
오리엔탈리즘이 나타난 영화 “300”
문화에 나타난 오리엔탈리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