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역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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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역사신문
4-1 17번
허용호
고려소개

고구려의 후기 국호. 장수왕대 이후 멸망 때까지 국호로 사용되었다. 고구려에서
국호를 고려로 개칭했다는 기록은 없다. 그러나 고구려의 국호가 고려로 개칭되
었음이 당시의 금석문이나 당시의 역사기록을 통해 확인된다.
1979년에 충청북도 충주에서 발견된 중원고구려비의 첫줄에 “五月中高麗大王祖
王(5월중 고려대왕조왕)”이라 하여 국명이 ‘고려(高麗)'로 기록되어 있다. 또 539
년으로 추정되는 연가7년명불상 광배의 기록에 “高麗國樂良東寺(고려국낙량동
사)”라고 하여 고려라는 국호가 쓰여 있다.
중국 역사서에는 태연(太延) 원년(435, 장수왕 23)에 고려에서 사신을 파견했다고
≪위서≫ 본기에 기록된 이후 계속 고려로 기록이 되고 있다.
또한 ≪남제서≫·≪주서≫·≪수서≫·≪당서≫ 등에서 고구려 열전의 명칭이 ‘고려
전(高麗傳)’으로 바뀌어 기술하고 있다. 또한 ≪일본서기≫에는 모두 고려로 기록
되어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도 고려로 기록한 많은 흔적을 남기고 있다. 특히
≪삼국유사≫의 왕력에서는 신라, 고려, 백제로 전체의 국명을 고려로 칭하고 있
으며 대부분의 기록을 고려로 칭하고 있다. 또한 당시에 기록된 ≪양고승전 梁高
僧傳≫ 등의 불교전적에서도 고려로 기록되어 있다.
중국 문헌에서 고구려의 국호가 고려로 기록된 연대 중 가장 시기가 앞선 것은
398년(광개토대왕 8), 423년(장수왕 11), 435년(장수왕 23)년의 기록이 찾아지
고 있으나 확실한 자료는 435년으로 판단된다. 국호의 개칭은 427년(장수왕 15)
에 있었던 평양 천도와 관련이 깊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선 죽 교

개성 선죽동에 있는 돌로 만든 다
리이다. 고려의 충신 정몽주가 이
방원의 부하들에게 죽음을 당한
곳으로, 비가 오면 핏자국이 나타
난다는 전설이 있다. 고려시대의
돌다리. 국보급 유산으로 개성시
선죽동 개성 남대문에서 동쪽으
로 약 1km 떨어진 노계천에 있다.
원래 이름은 선지교였으나 정몽
주가 피살되던 날 밤 다리 옆에
대나무가 났기 때문에 그 이름을
선죽교로 고쳤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다리 난간의 너비는 2.54m,
길이는 6.67m.
망 월 대

개성의 송악산 기슭에 있는 고
려 시대의 왕궁터로 지금은 건
물이 모두 없어지고 받침돌만
남아 있다. 만월대의 가장 큰
풍수적 특징은 건물을 배치할
때 인위적으로 균형을 잡으려
하지 않고 자연 지형의 흐름을
따르려 했다는 것이다.송악산
남쪽기슭에 있는 고려의 왕궁
자리로 왕궁의 넓이는 125만㎡
. 원래 달을 바라보는 곳이라는
뜻에서 망월대라고 불렀는데
그 이름이 전해오면서 만월대로
되었다고 한다. 오늘 여기에는
궁터와 주춧돌만이 남아있다
해 인 사 장 경 판 전

대장경은 경(經)·율(律)·논(論)의
삼장(三藏)을 말하며, 불교경전
의 총서를 가리킨다. 이 대장경
은 고려 고종 24∼35년
(1237∼1248)에 걸쳐 간행되
었다. 이것은 고려시대에 간행
되었다고 해서 고려대장경이라
고도 하고, 판수가 8만여 개에
달하고 8만 4천 번뇌에 해당하
는 8만 4천 법문을 실었다고 하
여 8만대장경이라고도 부른다.
고려 역대 왕
1.태조 2.혜종 3.정종 4.광종 5.경종
6.성종 7.목종 8.현종 9.덕종 10.정종
11.문종 12.순종 13.선종 14.헌종 15.숙종
16.예종 17.인종 18.의종 19.명종 20.신종
21.희종 22.강종 23.고종 24.원종 25.충렬왕
26.충선왕 27.충순왕 28.충혜왕 29.충목왕
30.충정왕31.공민왕32.우왕33.창왕34.공양왕
고려의 음악
고려의 음악으로는 속악(俗樂)·아악(雅樂)·당악(唐樂)
이 있었다. 속악은 한국 고유음악으로 가곡에는 《동
동(動動)》 《대동강》 《한림별곡》 등이 있고, 악기
에는 가야금·비파·장구·퉁소 등이 있다. 아악은 궁정·
종묘 등에서 연주하는 정악(正樂)으로 송나라에서 예
종 때 안직숭(安稷崇)이 전래하여 궁중음악으로 발달,
현재까지 한국에만 보존되어 있는 동양의 고전적 정악
(正樂)이다. 악기로는 금종(金鐘)·옥경(玉磬), 각종 현
금(絃琴)과 피리·퉁소 등이 있는데, 1370년 공민왕 때
명나라 태조가 고려 사신에게 새로 악기를 보내어 내
용이 풍부해졌다. 이러한 음악은 가면극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져 처용무(處容舞) 등 탈춤을 중심으로 한 산
대극(山臺劇)도 크게 유행하였다.
고려의 위인들
강감찬
김부식
정몽주
의천
경대승
맹사성
최승로
이첨
궁예
서희
안향
일연
기황후
정중부
최충헌
지눌
길재
신돈
윤관
최영
슬라이드가 끝났습니다.
봐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