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문둥병자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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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문둥병자의 고백
청소년부예배
아, 나를 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얼마나 싫었던가.
문둥병 5년에 양손이 뭉툭해졌다.
손가락 끝이 떨어져나갔고 한쪽 귀와 코도 살점이
떨어져나갔다. 나를 보면 아버지들은 자식들을
붙들었다. 어머니들은 얼굴을 가렸다. 아이들은
손가락질하며 쳐다보았다.
문드러진 상처는 몸에 걸친 누더기로 가릴 수
없었다. 눈 속의 분노 또한 얼굴을 두른 수건으로
가릴 수 없었다.
아예 분노를 숨기려 하지도 않았다.
말없는 하늘에 흉측해진 주먹을 휘두르며 하소연
하던 밤이 얼마나 많았던가?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 이래야 합니까?”
내가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우리 부모가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도 모른다. 내가 아는 거라고는 모든
것이 정말 지긋지긋해졌다는 것이다.
격리 지역 악취 구덩이에서 자는 것도 지겹다.
사람들에게 내 존재를 알리기 위해 목에 달아야
하는 저주스러운 방울도 넌더리난다. 그따위
방울이 필수품이라도 되는 것처럼.
한번 누가 쳐다보기만 해도 광고가 시작된다.
“부정하다! 부정하다! 부정하다!”
“주여!”
그분은 걸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도 나를 보았다.
두려움의 물결이 무리를 훑고 지나갔다.
여기저기서 팔이 얼굴로 올라갔다.
아이들은 부모 뒤로 숨었다.
“부정하다” 누군가 소리쳤다.
나는 그들을 욕하지 않는다.
내 모습은 산 송장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그들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겁에 질린 그런 모습은 수천 번도
더 본 것이었다.
그러나 그분의 긍휼은 한번도 보지 못한 것이었다.
모두가 뒷걸음질쳤지만 그분만은 아니었다. 그분
은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내 앞으로.
5년 전 아내가 내 앞으로 다가왔었다. 내 앞으로
온 것은 아내가 마지막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분이 내 앞으로 왔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원하시면 저를 깨끗게 하실 수 있나이다.”
그분이 말 한 마디로 나를 깨끗게 하셨다 해도
나는 감격을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나에게 말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분은
내곁으로 왔다. 그리고 나에게 손을 댔다.
5년 전 아내가 내 몸에 손을 댔었다. 그 뒤로 아무
도 내게 손을 대지 않았다. 오늘까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그분의 말은
그 손의 감촉만큼이나 부드러웠다.
밭고랑으로 물이 흐르듯 내 몸에 기운이 밀려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바로 그 순간, 마비됐던
부위에 온기가 느껴졌다.
말라비틀어진 부위에 힘이 느껴졌다. 구부렸던
등을 펴고 고개를 들었다.
그분의 허리께 머물던 내 눈으로 이제 그분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그분의 미소 띈 얼굴을.
그분은 손을 오므려 내 귓전에 댄 뒤 바짝 곁으로
다가왔다. 어찌나 가깝던지 그분의 따뜻한 호흡과
젖은 눈빛을 그대로 느끼고 볼 수 있었다.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
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그래서 나는 지금 거기 가고 있는 중이다.
가서 제사장에게 내 몸을 보이고 그를 끌어안을
참이다.
아내에게 내 몸을 보이고 아내를 끌어안을 것이다.
딸아이를 번쩍 들어올려 끌어안아 줄 것이다.
그리고 더러운 내 몸에 손을 댄 그분을 나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그분은 말 한마디로도 나를 고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분은 단순한 치료 이상의 것을 나에게
주기 원했다. 나를 존중하고 내 가치를 인정하며
내게 신앙을 주기 원했다.
생각해 보라 … 사람도 손대지 않던 무가치한
자가 하나님의 만지심을 입는 존귀한 자가
되었으니….
1) 맥스 루카도, 윤종석 역, 『예수님처럼』, 44-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