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사람 - parksi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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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구 사람
영남이공대 평생교육원
천마 re-Life 자치대학
2013.05.27(월)-28(화)
경북대학교 명예교수 박석돈
http://www.parksimon.com
대구를 상징하는 것들
Character
Bird 독수리
Symb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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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wer 목련
Tree 전나무
Color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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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사과
• 19세기 말 대구에 정착한 외국인들
– 새로운 사과 품종 도입
• 영국 성공회 플레처(fletcher) 신부
– 스미스 사이다(Smith Cider),
– 홍옥(Red Beaming),
• 대구 동산기독병원 초대원장
– Dr. Woodbridge O. Johnson
– 미주리(Missouri),
• 이로 인해 대구의 사과 과수원은 전국적으로 유명
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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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약령시(藥令市)
• 1658년(조선 효종 9년)
– 임의백 관찰사가 경상감영 안의 객사(客舍) 주변에 약령시 개장
– 현 대구중부경찰서 일대에서 처음 열리기 시작하였다.
• 1908년(융희 2년)
– 약령시를 현재 남성로로 이전하였다.
• 1941년
– 조선총독부가 약령시 개장행사 불허함.
• 1978년
– 약령시부활추진위원회 발족 및 제1회 약령시 개장행사 개최
• 1985년
– 대구시 '명소의 거리'지정
• 2000년
– 새천년준비위원회, '새 즈믄(千)해의 거리'지정 및 제1회 약초꽃 잔치
• 2001년
– 문화관광부, '문화의 거리'지정
– 한국 기네스 위원회, '가장 오래된 약령시' 인증
• 2009년
– 대구약령시한방문화축제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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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약령시 한방축제(2012.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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達城公園
• 삼국시대에 쌓은 토성(土城)
– 사적 제62호(1961년 1월 21일 지정)
– 216년 2월 달벌성(達伐城)을 쌓았다(삼국사기).
• 1736년 대구읍성 조성
– 때까지 대구읍성으로서의 역할 담당
• 일재 때 동물원으로 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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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사키
린따로(水崎林太郞)가 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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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09.27 착공, 1925.10.30 완공 둘레 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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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관광호텔에서 바라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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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령(顧母嶺)의 전설
• 옛날 고모령에는 남편 없이 어린 남매를 키우는 홀어머니
가 있었는데, 하루는 스님 한 분이 와서 '이 집은 전생에 덕
을 쌓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가난한 것'이라 하였다. 이에
어머니와 어린 남매는 덕을 쌓기 위해 흙으로 산을 쌓아 현
재의 모봉, 형봉, 제봉이라는 세 개의 산봉우리가 되었다.
• 그런데 이를 쌓는 과정에서 동생과 형이 서로 높이 쌓고자
시샘을 하여 싸우는 것을 보고 어머니는 크게 실망하여 집
을 나와 하염없이 걷던 길이 지금의 고모령이며, 정상에 와
서 집을 뒤돌아봤는데 그 이름이 뒤돌아 볼 '고(顧)'와 어미 '
모(母)'를 합쳐 고모(顧母)라는 이름이 나왔다.
• 지금은 경부선의 건설로 산이 잘렸고, 망우 공원에서 파크
호텔 팔현부락을 거쳐 고모역으로 이어지는 옛 고갯길이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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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구 사람
• 대구는 어떤 곳인가?
• 대구 사람은 어떤 사람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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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는 어떤 곳인가?
I.
• 자연적 환경
– 대구의 기후
– 지리적 환경
• 인문적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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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역사
대구의 인구
대구의 산업
대구의 행정과 도시발전
도시구조 : 변화와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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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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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m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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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丘達城圖 : 18세기 후반 손암 정황(겸재 정선의 손자)
대구읍 성곽(城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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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읍
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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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대구역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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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년 전 대구 역전 중앙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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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대구. 오른편 건물이 중앙우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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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옛 중앙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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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서울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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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
• 대구의 옛 이름엔 (다벌)多伐, 달벌(達伐), (달불성)
達弗城, (달구벌)達句伐, 달구화(達句火). 대구(大
丘) 등이 있다.
– 달구벌은 대체로 '크고 넓은 벌판' 정도로 이해할 수 있
다.
• 선사시대 달구화(達句火), 달구벌(達句伐), 달불(達
弗), 달성(達城)으로 성읍이 형성되었다.
• 청동기시대 부족국가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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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
• 261년(첨해이사금 15년)
– 달벌성(현 달성공원) 축조(244년 축성 시작)
– 5세기말~6세기초 달구벌이 신라에 병합되어 달구화현
(達句火縣, 達弗城)이라 칭하였다.
• 689년(신문왕 9년)
– 수도를 서라벌에서 달구벌로 천도를 시도한 적이 있음.
• 757년(경덕왕 16년)
– 위화군(喟火郡)을 수창군(壽昌郡)으로,
– 달구화현(達句火縣, 達句伐)을 대구현(大句縣)으로 개칭.
• 927년(경순왕 원년)
– 후백제 견훤과 고려 왕건 사이의 공산 전투가 현재의 팔
공산 일대에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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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
• 940년(태조 23년)
– 수창군을 수성군으로 개칭.
• 1018년(현종 9년)
– 수성군·장산군·해안현(解顔縣)과 대구현·화원현(花園縣)·팔
리현(八里縣)·하빈현(河濱縣)으로 행정 계통이 양분되었다.
– 대구현 등은 경산부(京山府) 관하에 두었다.
• 1203년(신종 6년)
– 무신정권기에 부인사 승려의 반무신란이 있었다.
• 1232년(고종 19년)
– 몽고의 침입으로 팔공산 부인사의 대장경을 소실.
• 1255년(고종 42년)
– 공산성에서 항몽(抗蒙)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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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
• 1394년(태조 3년)
– 대구현이 수성현·해안(동촌)현·하빈현을 관할.
• 1419년(세종 원년)
– 대구현·수성현·해안(동촌)현·하빈현 이상 4개 현을 통합, 대구군으
로 승격.
• 1466년(세조 12년)
– 대구군을 대구도호부로 승격.
• 1590년(선조 23년)
– 대구읍성이 토성(土城)으로 축성되었다.
• 1592년(선조 25년)
– 임진왜란 중 대구읍성은 파괴되었다.
• 1601년(선조 34년)
– 경상도 감영을 대구부로 이전, 설치. 화원현·경산현·하양현을 편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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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58년(효종 9년)
– 약령시가 경상감영 안의 객사 주변에서 처음 열리기 시작하
였다.
• 1736년(영조 12년)
– 대구읍성이 석성으로 4월에 축조에 들어가 이듬해 6월 완공
되고, 11월 선화당에서 준공식을 가졌다.
• 1750년(영조 26년)
– 유생 이양채가 '구(丘)'자가 대성 공자의 휘자에 저촉되므로
피해야 한다(피휘)며, 대구(大丘)를 대구(大邱)로 개칭할 것을
상소.
– 정조·헌종 때는 대구(大丘)와 대구(大邱)로 혼용하다가 철종
이후에는 대구(大邱)만 사용.
• 1895년(고종 32년)
– 8도(道)제가 폐지되고 23부제가 실시, 대구부/대구군가 되었
다.
• 1896년(건양 원년)
– 8월 4일 13도제가 실시되어, 경상북도/ 대구군이 되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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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 1898년(광무 1년) :
– 해성재(신식 교육기관) 설립, 나중에 성립학교, 해성학교로, 현 효성초등학교
• 1899년(광무 3년)
–
–
–
–
–
2월 대구제일교회가 대구 최초 서양식 병원 제중원(동산병원의 전신) 설립.
7월 대구 최초 근대 중등교육기관 달성학교 설립.
1916년 대구고등보통학교 계승,
1950년 경북중학교와 경북고등학교로 분리,
1970년 경북중학교 폐교, 현 경운중학교 계승.
• 1902년(광무 6년)
– 애덤스 선교사에 의해 신명여자소학교 설립.
• 1903년 :
– 대구 계산성당 건립(대구시 문화제)
• 1905년(광무 9년)
– 달성공원이 조성되었다.
• 1906년(광무 10년)
– 9월 24일 대구군 소속 각북면·각현내면·각초동면·각이동면 이상 4개 면은 청도
군으로 이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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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6년(광무 10년) 10월
– 대구읍성 성벽이 대구군수 겸 관찰사 서리였던 박중양에 의해 황제
의 윤허 없이 철거되었다.
– 경상감영의 선화당 정남쪽에 위치했던 포정문(布政門)의 문루인 관
풍루를 지금의 달성공원으로 옮겼다.
• 1907년(광무 11년) 2월
– 서상돈 등이 중심이 되어 국채보상운동을 전개, 전국적으로 큰 호응
• 1907년(광무 11년)
– 대구 첫 영화관 금좌(錦座)가 현재 태평로2가에 문을 열어 12년 동안
번창.
• 1907년(광무 11년)
– 애덤스 선교사의 부인 부르엔(Marda Bruen)에 의해 여자중등학교로
신명여학교가 문을 열였다.
• 1908년(융희 2년)
– 경상감영의 객사와 주요 건물이 파괴되었고, 약령시를 현재 남성로
로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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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 1910년(융희 4년)
– 8월 29일 일본 제국이 대한제국을 병합.
– 1910년 10월 1일 대구군을 대구부로 개칭.
• 1913년
– 대구역이 건립되었다. 322호에 전기가 들어왔다.
• 1914년
– 천주교 대구교구 성유스티노신학교 설립. 현 대구가톨릭대학교 전신.
• 1915년
– 1월 15일 서상일 등 영남지역 인사들과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라는
비밀결사를 조직
– 3.1만세운동에서 대구지역 운동을 주도.
– 대구 샬트르 성바오로수녀회 설립. 대구에 처음으로 수녀회 설립
• 1919년
– 3월 8일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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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 7월 1일
– 시내버스가 운행되었다.
– 대구역을 기점으로 시내 각 방향으로 물론이고 팔달교 및 동
촌까지 운행.
• 1923년
– 대구자혜의원은 경북도립 대구의원이 되었다. 경북대병원
의 전신.
• 1932년
– 대구 최초의 백화점 이비시야 백화점이 등장하였다. 현재의
동성로 성내1동 LG패션자리이다.
• 1938년 10월 1일
– 달성군 수성면, 달서면 일부(감삼동 제외), 성북면 일부(동변
동·서변동·연경동 제외)을 대구부에 편입하였다.[14]
• 1938년 11월 2일
– 옛 수성면, 옛 달서면, 옛 성북면 지역에 대구부 동부출장소·
서부출장소·북부출장소가 각각 설치되었다.(3출장소)
• 1941년
– 대구 약령시가 폐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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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정기
• 1945년 8월 15일
– 대한민국 광복.
• 1945년 9월 29일
– 대구역에서 열차끼리 충돌하여 73명이 사망하고 120여
명이 중상을 입는 참사가 일어났다.
• 1946년 10월 1일
– 대구 10·1 사건(대구폭동 혹은 10월인민항쟁) 발생.
• 1948년 4월 1일
– 일본식 동명이 한국식 동명으로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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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 1949년 8월 15일
– 대구부에서 대구시로 개칭하였다.
• 1950년 7월 16일
– 6.25전쟁으로 인해 8월 17일까지 대한민국의 임시 수도가 됨.
– 대한민국 육군본부, 주한 미8군 사령부 이전 설치.
• 1958년
– 동촌, 공산, 가창, 월배, 성서 대구시로 편입
• 1960년 2월 28일
– 대구지역 고등학생들은 2.28학생의거를 일으켰다.
– 이 의거는 4.19의거로 연결되었다.
• 1963년 1월 1일
– 구제(區制)가 실시되어 각 출장소가 중구·동구·서구·남구·북
구로 승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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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1년 7월 1일
– 대구직할시 로 승격.
• 1991년 3월 26일
– 성서 초등학생 5명이 실종되는 사건 발생.
• 1991년 7월 8일
– 지방자치제도의 부활로 대구직할시의회 개원.
• 1995년 1월 1일
– 대구광역시로 개칭. 달성군을 펀입
• 1995년 4월 28일
– 대구 상인동 가스 폭발 사고가 일어나 101명이 사망.
• 1998년 5월 2일
– 대구 지하철 1호선(진천~안심) 개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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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2월 18일
– 대구 지하철 화재사고 발생으로 192명의 사망자와 148
명의 부상자 발생.
• 2003년 8월 21일~31일
–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 2005년 10월 18일
– 대구 지하철 2호선(문양~사월) 개통.
• 2011년 8월 27일~9월4일
– 제 13회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 2012년 9월 19일
– 대구 지하철 2호선이 영남대학교까지의 연장 개통.
• 2013년
– 세계에너지총회.
• 2014년
– 대구 도시철도 3호선을 개통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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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지형
• 대구는 높고 규모가 큰 산줄기로 둘러싸인 분지 지
형이다.
• 산:
– 북쪽에는 팔공산 : 1,193m
– 남쪽으로는 비슬산 : 1,084m
• 하천 :
– 신천이 남에서 북으로 흐르고
– 북쪽에서 금호강과 합쳐진다.
• 대구 시가지는 신천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넓게 펼
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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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지리
• 新川은 비슬산 줄기에서 發源하여 南部山地의 谷口인 嘉昌(가창)에서
龍頭부리(용두방천)를 거쳐 시내로 들어 와서 배나무 샘(지금의 梨泉洞)
과 水道山(대구수도관리소가 있는 산, 기린의 모양을 하고 있다 해서
기린산이라 했음)
• 동쪽 기슭을 스쳐 건들 바위를 지나 이곳에서 한바퀴 돌아 깊은 물 구비
를 만들고,
• 다시 連龜山(연구산, 제일여중이 있는 산), 蛾眉山(아미산, 대구 향교가
있는 산, 모양이 나비눈썹 같다고 하여서) 밑으로 해서 東山(신명여고
일대의 산)을 지나 달성공원 앞으로 해서 날뫼(飛山洞)로 하여 達川(達
西川)으로 흘러 八達津(팔달진, 팔달교부근)에서 琴湖江(금호강)과 合
流했다.
• 이것을 正祖 1년(1777)에 大丘判官(대구판관)으로 부임한 이서가 1778
년에 사재를 들여 해마다 겪는 대구지방의 물난리를 막고자 물길을 지
금의 新川으로 돌렸고 新川을 현재의 백사부리(서변 잠수교와 침산교
부근)에서 琴湖江으로 流入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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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의 대구 풍광
•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의 大邱十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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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一景 : 琴湖泛舟(금호범주, 금호강의 뱃놀이)
第二景 : 笠巖釣魚(입암조어, 입암의 낚시)
第三景 : 龜峀春雲(귀수춘운, 거북산의 봄 구름)
第四景 : 鶴樓明月(학루명월, 금학루의 밝은 달)
第五景 : 南沼荷花(남소하화, 남소의 연꽃)
第六景 : 北壁香林(북벽향림, 북벽의 향림)
第七景 : 桐華尋僧(동화심승, 동화사의 중을 찾음)
第八景 : 櫓院送客(노원송객, 노원의 송별)
第九景 : 公嶺積雪(공영적설, 팔공산에 쌓인 눈)
第十景 : 砧山落照(침산낙조, 침산의 저녁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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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琴湖泛舟(금호범주, 금호강의 뱃놀이)
• 琴湖江의 根源 :
–
–
–
–
하나는 慶州의 母子山에서 발원,
또 하나는 新寧의 보현산(普賢山)에서 發源
永川 상계(雙溪)에서 合流
河陽, 半夜月을 지나면서 구비마다 아름다운 景勝을 이룸
• 아양루(蛾洋樓)가 있는 東村유원지 일대
• 검단(檢丹)의 창벽(蒼壁)과 화담(花潭)의 진달래,
• 砧山 落照(침산 낙조)
• 노원(櫓院)의 白沙場,
• 와룡산(臥龍山)의 옥소암(玉沼岩), 강창(江倉)의 절벽
• 강정(江停)나루에서 洛東江으로 流入
• 금호강은 大邱의 젖줄로서 강안(江岸) 곳곳에 누대정사( 樓臺亭
舍)와 景勝地가 많아 시인묵객(詩人墨客)들의 사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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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笠巖釣魚(입암조어, 입암의 낚시)
• 입암(笠巖) : 건들바위
– 현재 대구광역시 중구 봉산동 에 있는 속칭 건들바위를
말한다.
– 큰 바위 위에 작은 바위가 얹혀 있는데 건드리면 건들건
들 한다고 건들바위라 이름하였다 한다.
– 높이 3m, 너비 1.6m의 이 바위가 영험하다 하여 지금도
매년 정초(正初)가 되면 부인들이 촛불을 켜고 향을 피
워 치성을 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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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笠巖釣魚(입암조어, 입암의 낚시)
• 입암(笠巖) : 선바위, 삿갓바위
• 고려사에 따르면 문종 24년(1070)에 대구현에 별이 떨어져 돌이 됐다는
기록이 나온다. 별똥별인 셈이다.
• 경상도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대구읍지에서 소개
한 삿갓바위는 유성이 떨어진 운석이라고 했다.
• 운석은 적어도 화강암 같은 단단한 재질이지만, 지금의 건들바위는 퇴
적암이다.
• 신천 경대교에서 상류 쪽, 즉 북구 대현2동 부근(신천 서편)에 높이 10m
규모의 갓 모양을 한 바위가 존재했다고 한다.
• 넓은 반석 위에 서 있는 삿갓바위는 당시 부녀자들이 촛불기도를 드리
는 장소로 유명했으나 70여년 전 신천의 범람을 막기 위해 강변 정비 공
사를 하던 중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해 지금은 사라졌다고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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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龜峀春雲(귀수춘운, 거북산의 봄 구름)
• 귀잠(龜岑 ; 거북산)은 운구산(運龜山), 오포산(午
砲山), 자래방우산 등으로 불리어온 대구광역시 봉
산동의 제일여중이 있는 연구산(連龜山)을 말한다.
• 순종(純宗)때 大邱府民에게 午正을 알리기 위해 이
곳에서 포를 쏘았기로 午砲山이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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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鶴樓明月(학루명월, 금학루의 밝은 달)
• 학루(鶴樓)는 금학루(琴鶴樓)를 말한다.
• 현 중구 대안동 50번지 일대에 자리잡고 있었던 舊 達城館(客舍)
東北쪽 모퉁이에 世宗 7년(1425) 당시 대구읍지군사(大邱邑知軍
事)였던 금유(琴柔)가 세우고 경상도관찰출섭사(慶尙道都觀察
黜涉使)였던 졸재(拙齋) 김요가 記文(기문)을 썼다.
• 이제 금후(琴候)가 邑에 부임했고, 邑에 금호(琴湖)의 이름도 있
고 보니, 그 이름과 樓의 모양이 鶴이 춤추듯 하여 樓에 오른 즉
一琴에 一鶴이라, 世俗의 티끌을 털어내고 마음에 거리낌이 없
는 상쾌한 氣象이로다.
• 거문고 소리에 은은히 和答하고 南風에 세상의 시름 풀어주는
즐거움이 있으니 그 이름을 금학루(琴鶴樓)라 함이 可하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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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南沼荷花(남소하화, 남소의 연꽃)
• 남소(南沼)란 남쪽 못이란 뜻인데 성당못(聖堂池)를 가
리킨다.
• 聖堂池는 ‘성댕이 못’ 이라고도 불렀다.
• 옛날 성당동에서 으뜸되는 마을에 八聖堂이 있었다.
• 八聖堂이 있는 마을이라고 八聖堂里 , 이를 줄여서 聖
堂, 聖堂里 하였다.
• 그 뒤 八聖堂을 헐고 대구 判官 金魯가 못을 팠는데 이
것이 현재 花園 방면으로 나가는 大路邊에 있는 주위
약 2Km의 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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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北壁香林(북벽향림, 북벽의 향림)
• 북벽(北壁)의 향림(香林)은 대구 북구 도동 일대의 절
벽산에 자생한 측백수림(側柏樹林)을 가리킨다.
– 대구천연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었다.
– 측백나무는 상록교목(常綠僑木)으로 우리나라의 丹陽, 英陽,
蔚珍 및 安東 等의 山地에서도 자란다.
• 북벽의 향림은 측백이 자랄 수 있는 분포지역의 南方
限界地로 植物地里學상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 이 북벽향림 이후 이 산을 香山이라고도 하였는데 여
기에 구로정이라는 아름다운 정자가 있다.
– 19세기 초엽 인근에 살았던 아홉 노인의 詩會를 기리는 후손
들이 중국 白樂天의 향산구로회(香山九老會)를 본떠 1933년
3월 이 산 낭떠러지 중턱 10여 평 남짓한 터에 정자를 짓고
구로정(九老亭)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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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동 측백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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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桐華尋僧(동화심승, 동화사의 중을 찾음)
• 동화사(桐華寺)는 大邱의 東北쪽 18km 지점인 도학동(道鶴洞) 八公山
기슭에 있는 新羅의 고찰(古刹)로 소지왕(炤智王) 15년(493)에 극달화
상(極達和尙)이 創建했다.
– 처음에는 유가사(瑜伽寺)로 하였다가 340년 후인 興德王(흥덕왕) 7년(832)에 憲
德王子(헌덕왕자) 心地王師(심지왕사)가 重建(중건)할 때 簡子(간자) 8개를 던
져 그 떨어진 곳에 佛堂을 이룩하니 지금의 籤堂(첨당) 뒤 작은 우물이 있는 곳
인데 때마침 겨울인데도 오동나무 꽃이 피었다 해서 桐華寺라 부르게 되었다 .
• 비로암, 양진암, 염불암 등의 부속 암자는 물론, 동화사입구 마애여래
좌상(보물 제243호),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244호), 극락전 삼층
석탑(보물 제246호), 비로암 삼층석탑(보물 제247호), 동화사 당간지주
(보물 제254호), 도학동 석조부도(보물 제601호) 등 보물 6점과, 金剛杵
(금강저), 泗溟大師(사명대사)의 眞影(진영)등의 문화재뿐만 아니라, 경
내에 1992년에 완공된 統一藥師大佛(통일약사대불)의 위용(높이 33m,
둘레 16.5m)이 동화사를 더욱 유명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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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櫓院送客(노원송객, 노원의 송별)
• 단정장정(短亭長亭) :
– 작은 숙사와 큰 숙사,
– 옛날에 五里마다 단정을, 십리마다 장정을 두었음.
• 櫓院(노원)은 大櫓院의 약칭인데 당시 大邱의 북쪽 關門(관문)인
이곳 大櫓院에서 惜別의 情을 노래한 것이다.
• 원래 도로 연변에 행인들이 쉬어가게 해 놓은 곳을 院 또는 亭(정)
이라 하였는데, 거리가 먼 곳을 長亭(장정), 가까운 것을 短亭(단
정)이라 했고, 이곳이 대구에서 서울로 가는 길목의 첫 나루터여
서 길손들이 쉬어 감은 물론 이별과 만남의 哀歡(애환)이 교차되
던 곳이다.
• 이 大櫓院 앞이 八達津(팔달진, 팔달교가 놓이기 전의 금호강 나
루)이어서, 그곳이 大邱의 關門(관문)으로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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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公嶺積雪(공영적설, 팔공산에 쌓인 눈)
• 八公山은 大邱盆地(대구분지)의 東北部를 병풍처럼 가리고 있는 산줄
기이다.
– 王建(왕건)과 甄萱(견훤)의 공산 전투에서, 王建이 포위당하여 죽게
된 것을 申崇謙(신숭겸), 金樂(김락)등의 여덟 공신이 장렬히 전사
하고 王建을 구했다 해서 八公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 최정상인 비로봉이 해발 1,192m 이고, 좌우로 염불봉, 삼성
봉이 펼쳐지고 동봉, 서봉 그리고 東南으로 관봉, 노적봉,
인봉, 수봉, 북으로 시루봉, 西로 파계봉을 너머 가산에 이
르는 環狀山脈(환상산맥)을 이룬다.
• 동화사, 파계사를 비롯하여 부인사, 송림사, 갓바위 등의 크
고 작은 사찰, 암자와 기암절벽 및 계곡, 폭포로 사시사철의
절경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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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砧山落照(침산낙조, 침산의 저녁노을)
• 砧山은 대구의 新川河口(신천하구)를 지키는 속칭 水口막이 山
이라 하고, 방망이를 닳았다 하여 일명 방망치산이라고도 했다.
• 높이 144m의 平地에 솟은 獨山으로 조선시대 때는 大丘府의 女
祭壇(여제단)이 있었다.
• ‘白沙부리’라 하여 북쪽에 있는 마을 앞에는 흰모래가 많았으니
침산에서 바라보는 저녁 노을은 푸른 숲에 물든 단풍과 넓은 백
사장이 펼쳐진 노원 나루에서 팔달교로 흘러 들어가는 금호강의
금빛 물결과 어울러 장관을 이루었다.
• 癘祭(女祭)壇이란 동네 수채나 水溝(수구)쪽에 돌이나 흙으로 단
을 쌓고, 그 위에 방아를 Y자 모양으로 거꾸로 세운 뒤, 여자의 속
곳을 뒤집어 입혀 놓고, 묽은 팥죽이나 수수밥을 올려, 문둥병이
나 못된 돌림병을 퍼뜨리는 女鬼, 惡鬼(악귀)를 쫓는 액막이 제사
를 지내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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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 둔치를 가운데로 한 대구 시가지
4/13/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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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대구 사람…
1.
2.
3.
4.
5.
6.
4/13/2015
대구사람들의 사고방식
대구시민의 정치적 태도
지방 권력에 대한 인식
대구발전의 걸림돌
사회조직
가치와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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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인구 확장 추세
인구
면적(㎢)
행정단위
비고
1925
764,35
9.25
대구군
대구부, 현풍군
1930
933,25
9.25
대구부
1910년에 개칭
1935
107,414
9.25
1940
178,923
115.64
1944
206,638
115.64
1949
313,705
115.64
1955
488,960
115.64
1960
678,277
436.19
1958년 확장
동촌,공산,가창,월배,성서
1970
1,063,553
1981
1,838,037
454.95
직할시 승격
칠곡군, 경산군 편입
1995
2,029,853
885.51
광역시 승격
달성군 편입
2005
2,525,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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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승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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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인구 현황
인구(명)
면적(㎢)
세대수
2,505,644
883.68
948,465
중구
75,439
7.06
35,175
동구
342,092
182.22
136,479
서구
220,211
17.48
91,162
남구
168,715
17.44
75,085
북구
448,485
94.08
164,222
수성구
459,779
76.46
161,836
달서구
606,557
62.34
217,731
달성군
184,366
426.60
66,775
계
4/13/2015
2013.01.01현재(외국인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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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인구(2013)
중구
3%
달성군
7%
동구
14%
달서구
24%
서구
9%
남구
7%
수성구
18%
4/13/2015
북구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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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자동차 대수
4/13/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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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토착민들
• 白氏 : 星山
• 夏氏 : 達城
– 宋나라에서 대도독(大都督)이었던 하흠(夏欽)이란 사람이 고
려 인종(仁宗) 때 귀화(歸化)하여 달성(達城)에 정착했음.
– 그후 흠(欽)의 아들 용(溶)이 고려 때 나라에 공을 세워 달성군
(達城君)에 봉(封)해졌으므로 후손들이 시조를 흠(欽)으로 하
고 본관(本貫)을 달성(達城)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음 .
• 裵氏 : 星山,
– 시조 : 고려시대 裵位俊
– 5세손 裵仁敬이 興安府院君에 봉해지다.
• 李氏 : 星州
• 徐氏 : 達城
4/13/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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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가 배출한 인물
• 서거정(徐居正 : 1420-1488) :
–
–
–
–
1460년 이조참의 때 謝恩使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대사헌.
경기도 화성시
1464년 조선시대 최초로 양관 대제학(兩館大提學).
1466년 다시 발영시(拔英試)에 장원한 후 육조(六曹)의 판서를 두루 지냄
1470년(성종 1)左贊成, 佐理功臣이 되고 達城君에 책봉.
• 45년간 여섯 왕을 섬겼다.
–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
• 《경국대전(經國大典)》《동국통감(東國通鑑)》《동국여지승람(東
國輿地勝覽)》 편찬에 참여했으며, 또 왕명을 받고 《향약집성방(鄕藥
集成方)》을 국역(國譯)했다.
• 성리학(性理學)을 비롯, 천문·지리·의약 등에 정통했다.
• 문집 : 《사가집(四佳集)》
• 저서 : 《동인시화(東人詩話)》《동문선(東文選)》《역대연표(歷代年
表)》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필원잡기(筆苑雜記)》
• 대구(大邱) 귀암서원(龜巖書院)에 제향되었다.
4/13/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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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가 배출한 인물
곽재우(郭再祐) : 1552~1617
망우당(忘憂堂)
조선시대 정치인, 군인,
임진왜란 때 의병장(義兵將)
서상돈(徐相敦) : 1851~1913)
아오스딩 & 옥다위
독립운동가,
국채보상운동을 일으킨 분
4/13/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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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돈 선생 고택
4/13/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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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내부
4/13/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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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현진건(玄鎭健) :(1900~1943),
작가 : 무영탑
이상화(李相和) : (1901~1943), 시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의 침실로”
현제명(玄濟明) : (1902~1960), 음악가
고향생각, 그 집 앞,
나물 캐는 처녀, 희망의 나라로,
4/13/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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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시인 이상화 고택
4/13/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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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이상화 고택 내부
4/13/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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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계산 성당
4/13/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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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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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의료선교박물관
4/13/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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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의료선교박물관
4/13/2015
대구-대구 사람 59 / 92
77
진골목
4/13/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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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朝陽)회관
서상일 선생(1887-1962)
1922년 에 건립, 대구구락부의 본거지
1982년 망우당 공원으로 이전
4/13/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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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동 고분군 공원
• 1978년6월23일 사적 262호 지정
• 삼국시대 고분 200여기 밀집
4/13/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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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로
4/13/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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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스타디움
4/13/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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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유명한 친일파 거두
•
•
•
•
•
•
•
•
•
박중양(朴重陽, 1878-1959) : 일명, 박작대기
1906년 관비 유학생으로 일본 유학
1903년 귀국 후 대한제국의 관료가 되다.
1906년 대구 군수로 재임 중 대구읍성 해체
1908년 경상북도 관찰사
1915년 총독부 중추원 참이
1919년 삼일만세 반대운동 전개
1949년 체포, 반민특위에 기소, 병보석으로 출감
만년에 대구 오봉산 근처에서 은거
4/13/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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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구사람들의 사고방식
• 부산과의 경쟁심리
• 강한 정체성
• 대구에 대한 자부심
– “여기서 처음 일어났다.”
– 국채보상운동
– 2 ∙ 28 학생의거
• 보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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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구시민의 정치적 태도
• 고향출신에 대한 강한 호감
– 대통령이 대구 근교 출신이다.
– 대구 출신이 ○○이 되었다.
• 직감의존적(aesthetic)이다.
– 비합리적, 비이성적이다.
• 정치적으로 논리정연 하면서도 동시에 정서적이고
직감의존적인 경향
– 일제강점기 동안에 일본 정부는 대구를 정치적으로 위험지
역으로 간주, 블랙리스트에 올려놓았다.
• 정부를 신뢰하지도 않고 국가에 대한 애정도 보이지
않는다.
– 중앙 정치에서 언제나 무시되어 왔다고 느낀다.
– 서울은 물론, 부산보다도 대접받지 못한다고 느낀다.
4/13/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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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방권력(市)에 대한 인식
• 대구시장은 대통령이 임명
–
–
–
–
•
•
•
•
•
지방정부의 재정은 중앙정부 지원
시의 토지투자로부터 얻어진 자금으로 조성
따라서 시는 지역주민의 의사를 무시
주민들은 시정에 무관심
선거에 의한 자치정부 구성 후에도 변화가 없다.
대구의 권력구조는 위계적(位階的)
시장이 의사결정의 주요 인물
시장은 중앙정부에 대부분 의존
지역의 전문가 집단인 각종 위원회는 들러리
– 일반 시민은 강력한 리더십, ‘호의적 독재’를 선호
– 시민들은 일반적으로 권력의존적
4/13/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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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대구발전의 걸림돌
• 자본유출과 두뇌(인재)유출
• 자본유출 :
–
–
–
–
대구∙경북의 금융자본 역외유출이 전국 최고
비수도권의 경제기반 붕괴
지역의 재정자립도 취약
지역경제기반 확충과 균형발전 도모
• 두뇌(인재)유출
– 국내외 조기유학, 해외유학, 고졸 후 대학진학, 대학재
학중의 우수대학 편입, 대졸 후 신규 취업, 경력직의 재
취업
– 대구지역의 인재는 행정능력, 나이, 교육적 배경, 외국
어 능력, 해외 경험 등에서 중앙에 비해 뒤떨어진다.
4/13/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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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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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유출에 따른 외부효과(GRDP감소액) 추세
4/13/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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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가족, 사회조직
• 대구사람들은 스스로 전통문화의 보존자로 自處.
– 여성의 일상 지출과 자녀교육문제의 주도적 역할 정도
• 재산관리 :
– 서울이나 중소도시에 비해 훨씬 미약
• 남편과 아내의 관계 :
– 서울 보다 훨씬 전통적
– 아직도 보수적∙권위주의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
다.
• 효성에 대하여 :
– 부모에게 절대적으로 순종
– 부모가 비록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도…
4/13/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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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 :
• 고부관계 :
– 고부관계는 아직도 냉랭하다.
– 요즈음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덜 엄격하다.
– 따로 살기를 원한다.
• 친척관계 :
– 친족관계가 쇠락하고 있다.
– 생활수준이 같은 친족끼리는 친하다
– 경제수준이 다르면 신분갈등을 일으킨다.
• 결혼풍속 :
–
–
–
–
1930년대에는 조혼 경향
교육받은 남편과 못 받은 아내의 이혼
중매결혼에서 연애결혼으로
재래식 결혼식에서 신식(최초 예식장: 1953년) 결혼식으로
• 친구관계 : 가장 평안한 대상
– 고향친구, 어린 시절의 친구, 직장 친구, 동네 친구, 친척
4/13/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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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가치와 종교
• 샤머니즘과 유교 :
– 한국 사회구조와 가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종교
• 유교윤리의 근본 : 上下∙主從關係 : 甲乙關係
–
–
–
–
君臣관계, 父子관계,
男女관계 : 女必從夫
兄弟관계,
친구관계 : 長幼有序 : 虛僞意識
–
–
–
–
–
–
상급자와 하급자
우수자와 열등자
지배자와 피지배자
대기업과 중소기업
도매상과 소매상
사장과 근로자
• 사회에서의 인간관계 : 甲이 힘이 있을 경우에만 타당
4/13/2015
※ 힘 없는 늙은이
※ 실직한 남편
※ 부도난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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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구 역세권 개발 조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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