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자에 대한 근현대의 평가들, 신영복

Download Report

Transcript 묵자에 대한 근현대의 평가들, 신영복

금곡성문교회
- 샬롬 성가대 -
2013. 8. 18.
정진우
성경 어느 구절일까요?
"하나님의 뜻을 밝혀 순종하고 받들어 온 세상에 시행하면,
나라가 다스려져 어지럽지 않고 만민이 걱정 없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된다.”
"하나님만이 고귀한 분이며, 지혜로운 분이므로
정의는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천하가 두루 평등하게 서로 사랑하게 하려면
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
"공중에 나는 새들과 들에 뛰노는 짐승들과
물 위를 날고 땅 속에 숨은 벌레들을 보라
저들은 수놈이 밭 갈고 씨 뿌리지 않아도
암놈이 실 잣고 길쌈을 하지 않아도
먹고 입을 것을 모두 하늘이 이미 마련해 주고 있다.”
2
☞ 성경이 아니라 묵자의 구절입니다.
墨子(묵자), 墨翟(묵적)
공자, 맹자 - 유가, 德, 仁, 忠, 孝, 禮
노자, 맹자 - 도가, 道, 자연(自然), 신선(神仙)
묵자 - 묵가, 사랑, 겸애(兼愛), 하느님, 平等, 반전(反戰), 平和
한비자 - 법가, 법치(法治), 힘(力), 무력(武力), 질서, 벌, 엄격
‘묵’(墨)이란
- 우리말로 먹, 죄인의 이마에 먹으로 새긴 묵형을 의미, 묵가(墨家)란 형
벌을 받은 죄인들의 집단을 의미
- 아울러, 검은색은 노역과 노동주의를 상징
- 묵(墨)은 목수의 연장가운데 하나인 먹줄의 의미로 읽기도 함, 먹줄은
목수들이 직선을 긋기 위해 쓰는 연장
→법도의 상징, 엄격한 규율을 의미
3
묵은 성씨라기보다 학파의 집단적 이름?
묵자는 성(姓)이 적(翟)이라는 설이 있음
- 그럼에도 그의 이름을 ‘적00’이 아니고 묵적이라고 한 것은 묵형을 받
았다는 사실을 표명하는 뜻에서 그것을 성으로 사용했다는 것
- 묵씨가 아니고 적씨인데도 묵적을 이름으로 사용
→ 묵적처럼 형벌을 받았다는 사실을 이름으로 삼아 공공연히 밝힌다는
것은 그 형벌이 부당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또 형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는 것을 공언하는 것. 오히려 숨기지 않고 그것을 자랑으로 여긴다는 것
→ 따라서 묵은 성씨라기보다 학파의 집단적인 이름이라는 주장이 좀 더
설득력이 있음, 유가(儒家)의 유(儒)도 공자(孔子)의 성씨가 아닌 것 처럼
4
유가와 묵가
‘묵적은 송(宋)나라 대부로서 성을 방위하는 기술이 뛰어났으며 절용(節
用)을 주장하였다. 공자와 동시대 또는 후세의 사람이다.’
(여기서 송나라는 우리나라 고려시대때 중국당나라 이후에 생긴 송나라가 아니라
우리나라 삼국시대 이전인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존재했던 수많은 나라들 중의 하
나)
- 사마천(BC100년경의 인물)의 사기(史記)에 기록되어 있음
묵가는 진시황제의 진나라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유가와 함께 가장 큰 세
력을 떨칠 수 있었을 것으로 짐작
‘가장 큰 학파는 유가와 묵가이며(출처 한비자), 공자와 묵자의 제자들이
천하에 가득하다(출처 여씨춘추)고 했다.’
그러나, 한(漢)나라 무제(BC100년경)때 유학이 국교로 되면서 묵가가 탄
압되었고 해외로 망명한 것으로 추측, 기원전 100년경
- 진, 한나라 이래 춘추전국시대 사회적 격동기가 끝나고 토지 사유를 중
심으로 하는 지주관료 중심의 신분 사회가 정착되면서 묵가는 자취를 감
춤. 상하의 계층적 차별을 무시하는 평등주의 사상이 용납될 수 없었기
때문
5
묵자에 대한 근현대의 평가들
<2009년도 세계와기독교변혁연구소의 1월 포럼, 대전>
오래전에 나 자신이 묵자를 처음 접한 것도 바로 그 <예수와 묵
자>라는 책을 통해서다. 당시 이를 읽고서 너무나 놀랬던 점은
묵자의 삶과 사상이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설파한 사랑과 어찌
그토록 흡사할 수가 있었던 것인지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시대적으로 보면 묵자가 예수 시대보다는 대략 500여 년 정도 앞
서 있다. 묵자는 본명은 묵적(墨翟)으로서 묵자도 예수님처럼 하
나님을 믿었다.
그의 어록 묵자를 보면 무려 3백여 차례나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
고 있다.
게다가 묵자의 직업도 목수였고 천민 출신이라고 한다.
현재 전해 내려오는 묵자의 글(원래는 71편인데 중간에서 소실되
어 현재는 53편만 있음)을 읽어보면 놀랍게도 우리가 성경을 읽
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구절들이 아주 많다. 몇 가지만
읊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6
묵자에 대한 근현대의 평가들
이러한 묵자의 재발견은 이천 오백 년을 넘는 20세기 들어서다. 원래 춘추
전국시대 당시에는 천하에 공자의 유가와 묵자의 묵가가 각각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을 대변할 정도로 양대의 큰 세력을 이루었다고 한다. 원래 묵자는
공자를 처음에는 따랐지만 나중에는 공자의 사상을 벗어나서 보다 새로운
변혁을 지향하는 사상가가 되었다고 한다.
묵자는 철저한 평등사상을 지녔기에 매우 급진적일 수밖에 없었고 적어도
부자와 주군의 위계를 인정하는 공자의 유가 세력들과는 달랐었다. 특히 묵
점 기세춘 선생님의 평가에 따르면, 공자와 맹자는 의전(義戰)을 주장했고,
묵자는 반전(反戰)을 주장한 데서 결정적으로 서로 갈린다고 한다.
(묵점 기세춘, 동양철학자, ‘예수와 묵자’, ‘노자의 도덕경’의 저자, 퇴계 이황과 사단칠
정 논쟁을 벌였던 고봉 기대승 학자의 후손)
그래서인지 맹자를 비롯한 유가 세력들은 묵가 사상을 매우 탐탁치 않게 평
가를 내리고 있는데, 결국 나중에 천하를 통일한 한나라가 유가 사상을 채택
함으로서 묵가 세력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아마도
통치하는 왕정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묵가 사상이야말로 매우 위험스럽고도
불온한 사상으로 취급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해야할 것이다. 그러다가 묵자가
재발견되고 그의 가르침이 재평가된 것은 20세기에 이르러서였다.
7
묵자에 대한 근현대의 평가들, 손문
<중국의 손문(孫文)>
“고대에 사랑을 말한 사람으로 묵자를 능가할 사람은 없다. 묵자가
말한 겸애(兼愛)는 예수의 박애(博愛)와 같은 것이다”. 나 역시 묵자
를 알면 알수록 내가 믿는 예수와 거의 이질감을 못느낄 정도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모두 하
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셨다(마태 5:9). 나는 묵자 역시 하나님의 아들
이라고 생각한다.
묵자가 설파한 대로, “위로는 하나님을 따르며, 땅에서는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그의 경천애인(敬天愛人) 사상과 예수님께
서 말씀하신 “네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
하며,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우리 주님의 계명과 어떤
큰 차이가 있는지를 잘 알지 못한다.
8
묵자에 대한 근현대의 평가들, 신영복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처음처럼’이란 휘호를 친필함>
‘사회의 혼란은 모두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다.’
- 묵자의 겸애(兼愛)사상
- 겸애는 세상의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똑같이 사랑한다는 뜻
- 평등주의, 박애주의
‘만약 천하로 하여금 서로 겸애하게 하여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한
다면’ 어찌 불효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천하가 서로 겸애하면 평화롭고 서로 증오하면 혼란해진
다. 묵자께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 까닭이 이와 같
다.’
9
동방박사?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애인약애기신 愛人若愛其身)
- 그런데 이 원문은 매우 낯익은 구절이 아닌가요?
- 성경구절과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음
- 비단 이 구절뿐 아니라 묵자의 하느님 사상은 기독교의 사상과 조
금도 다르지 않다. 기독교의 하나님이 사랑이듯이 묵자의 하느님 역
시 겸애이기 때문이다.
-묵자가 중국에서 자취를 감춘 때가 기원전 100년경이었기 때문에
아기 예수가 태어날 때 찾아온 동방박사가 망명한 묵가들의 일원이
었다는 상상까지 나오고 있음
- 물론 다른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님
10
참고자료
▲ 참고자료
묵자 (권오석 역해譯解, 홍신문화사, 1994)
강의 (신영복, 돌베게, 2004)
‘세계와 기독교 변혁연구소’ 관련 사이트
▲ 관련서적
묵자(기세춘, 바이북스, 2009)
예수와 묵자(기세춘, 문익환, 홍근수, 바이북스, 2009)
묵자, 사랑, 그리고 평화를 향한 참 지식인의 길
(묵적, 박영하 옮김, 풀빛, 2006)
11
샬롬 성가대원 여러분!
더운 여름
묵자와 같은
동양고전의 바다에 빠져
더위를 잊어 보세요.
사랑합니다.
12
감사합니다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