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수집가 역할을 담당하는 미술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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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4. 수집가 역할을 담당하는 미술괄

2007.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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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ys of Seeing - John Ber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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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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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ys of Seeing - John Berger
1. 시각 매커니즘
19세기 전반 사진의 등장으로 시각세계에 매우 커다란 변동이 일어났다.
본다는 것은 크게 과학즉 측면과 인지즉 측면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문적인 언어를 사용하면
시야와 시각세계로 구분 할 수 있다.
시야는 끊임없이 변해가는 빛의 연속패턴이고, 이것이 망막에 기록되어 데이터로
처리된 후 스스로의 시각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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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각 매커니즘
태어나면서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이 각막이식수술을 받고 일반인 처럼 볼수 있게
되기까지는 몇 개월 혹은 몇 년이 걸릴 수 도 있다.
시력을 되찾은 후에 시야라는 의식이 생겨나게 하는 뇌의 작용이 있어야만 시각의
정보처리가 뇌에서 이루어짐으로써 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시각과정은 그 단계적인 인지구조에 의하여 인간의 진화나 의식의 발생문제에도 깊
은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인지▪인식구조를 평면상에 놓고 극점으로 밀어내는 것이
이른바
원근법이라고 부르는 시각의 구조화 기술이다.
거기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프레임, 즉 액자라는 장치는 시각에 의한 딱딱한 위치를 설정
하는 제도화의 시작이다.
원근법 15c 이탈리아 사람들에 의하여 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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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각 매커니즘
원근법의 출현과 때를 같이하여 시각 메커니즘이 점차 상세하게 알려지게 되었고,
핀홀 카메라가 만들어져 이것을 이용한 작업이 화가들 사이에서 유행하게 되었다.
[카메라 옵스큐라]
핀홀 카메라나 원근법이 아직 불 환전 했던 시대에 르네상스 화가들은 자신의 상상력을 보
충하여 그림을 그렸다. 원근법에 의하여 세계를 소형화시키고 액자 속에 넣어 소유하고 싶
1787년 이명기가 그린
“유언호” 초상화
다라는 근대 특유의 시각적 인식이 점차 권력구조의 기반과 동화 되었다.
소유와 비소유의 욕망으로 인하여 사회지배계층 구조에도 교묘한 파급효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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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각 매커니즘
보는 것은 단지 눈으로 본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가 존재하는 사회나 문화에 의하여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시각이나 지각에 국한되지 않고 건축이나 장식 또는 도시 전체가
구조화되어 환경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중세에 가장 중요하였던 감각은 청각이고, 시각은 촉각 다음에 오는 세 번째 감각이었다고 할 수
있었으나, 사진, 영화, TV 따위의 영상장치의 개발로 시각은 우리의 감각 가운데 최상위에
자리하게 되었으며 인식의 근본을 형성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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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진의 발생과 그 배경
1839년 8월 19일 프랑스 학사원에서 개최된 과학아카데미와 예술아카데미 합동회의 석상에서
프랑소와 아라고가 사진술을 상세하게 발표 하면서부터 카메라는 19세기 사람들의 꿈인 낭만적인
기계가 되었다. 하지만 신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난하는 종교가들의 무리 등등이 사진이 발명된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나 사람들의 열광적인 환영과 반발, 화가들의 불안과 초조, 도덕가나 지식인
들의 기대와 공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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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진의 발생과 그 배경
근대의 시작이란 무엇보다 종교나 전통적인 미의식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가 본 것을 신뢰하는
것이고, 그것을 확실히 인식하는 것이며, 자기의 시점을 구축으로 한 세계 구성의 확립을 지향하는
것이었다.
르네상스 이후 카메라 옵스큐라 그리고 핀홀 카메라나 카메라 루키다 따위의 화가를 이한 과학적인
보조기계수단이 수없이 등장하였으며, 18세기 말에는 회화를 위한 정밀한 기구제작이 거대한
산업형태로 발전할 정도로 질적⁃양적으로 절정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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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진의 발생과 그 배경
보는 것과 그리는 것 사이의 간격이 점차 좁혀졌으며, 빛으로 그리는 사진이 생겨난 것은
어쩌면 19세기라는 시각시대의 필연적인 요소였을지도 모른다. 사진은 예술과 과학의
양성을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장점으로 인하여 놀라운 침투력으로 사람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항상 예술과 과학이라는 이중성을 띠면서, 19세기 사람들의 사고나 창조 가운데에서 사진이
불러일으킨 영향이 얼마나 커다란 역할을 담당했는가를 알 수 있다. 인간의 시선을 모방한 회화세계
의 체계는 의미를 잃게 되었으며, 시각이나 감각의 독자적인 해석으로 방향을 전환시킨 새로운 화가
들이 활동을 시작하면서, 공간⁃시간⁃운동 등 인간의 질서를 지배하는 여러 가지 요소를 새롭게 인식하
려고 했으며, 이러한 변화는 회화가 종래의 시각에서 벗어나려는 출발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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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부르즈와의 시각
농업에서 공업으로 인구의 증가와 인간사회에 커다란 이변이 속출하던 시점 사진의 발명은
가장 획기적인 사건이었으며 사진술은 자연히 사회에 대한 건전한 신뢰를 바탕을 둔 기계문명의
찬란한 개막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사진의 사실정신은 부르즈와계급이 제일 먼저 참여하였고, 어떻게 보면 그들의 지칠 줄 모르는
소유욕의 흐름이었을 것이다. 사진을 사용하여 초상화를 그린 최초 화가 중의 한 사람인 앵그르의
대표작인 귀족이나 유복한 시민들을 묘사한 일련의 초상화에는 그의 후원자인 부르즈와계급의
요구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었다. 사회적 위상뿐만 아니라 개인의 존엄을 그림으로 보증하기 위하여
중후하게 묘사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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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부르즈와의 시각
1830년대에 부르즈와계급의 요망에 의하여 미술전람회에 급증하게 된 초상화도 사진발명 이후
초상사진이 팔려나가게 되자 순식간에 그 기능을 사진에 빼앗겨버리게 되었다. 초상화에서
초상사진으로의 이행은 귀족에서 신흥중산계급으로, 또 수동에서 기계화로 변화되는 사회 환경의
구조개혁도 암시하고 있다.
1824년 당시는 부르즈와계급이 회화의 주요한 구매자가 되었기 때문에 천정이 높은 방,
넓은 저택이나 성에 사는 귀족들의 시대와 비교했을 때 확실히 그림의 크기가 작아졌다고
기록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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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부르즈와의 시각
19세기 후반 만국박람회 (1855년)를 기점으로 파리는 더욱 근대화되었으며, 기계문명 역시
급속도로 발전하였다. 뿐만 아니라 파리는 사치와 최첨단 유행을 자랑하는 도시가 되었고 교통망의
확산으로 자본주의사회 특유의 할기가 살아나게 되었다.
이시점 사진관은 파리의 새로운 풍속으로 등장하였고 부르즈와의 초상을 무수히 만들어내게 되었다.
1861년 당시 파리에서만 약 3만 명의 직업 사진작가가 있었다. 이러한 양적 증대는 고도의 원숙한
교양이나 세련된 감각도 없는 질적 저하를 동반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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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부르즈와의 시각
당시 인기를 누리고 있었던 무대배경이나 실내장식과 의상 등으로 자기 자신의 지위나 신분을
확인하고 연극에 쓰이는 포즈나 표정으로 인물을 사회적인 타입으로 묘사했으며, 대신이나 변호사
분위기의 복장으로 카메라 앞에서는 방법은 1870년대부터 20세기 초기에 걸쳐서 크게 유행했다.
1870년부터 1880년대에는 포켓에 넣을 수 있는 초상사진이 나왔으며, 누구라도 가볍게 자기 초상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점은 초상의 대중화를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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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수집가 역할을 담당하는 미술괄
1793년 개관된 루브르 미술관은 초기에는 왕권과 부르즈와계급의 유산을 보관하는 곳으로
생각되었다. 콜렉션이란 소유의식 그 자체였으며, 단편의 소유인 그림을 소유하는 것, 그것도
가능한 많이 수집한다는 콜렉션의 의지는 바로 르네상스 이후에 보이는 문화의 단면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18세기 말에 성립된 부르즈와 문화인 오늘날의 보관 장치이며, 일찍이
있었던 왕권의 변형된 잔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미술관은 왕과 부르즈와계급의 역사를
사회적인 기억으로 배치하는 공간이 되었다. 또 한편으로 19세기에 들어와서부터 급격한
시대변동과 동조하여 최후의 예배적인 장소로서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로 인해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그 종교의 현장이었으며, 그러한 건축은 당연히 교회나 예배장소와 비교 되었으며,
그 예배의 중심은 신이 아니라 예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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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수집가 역할을 담당하는 미술괄
19세기 후반 이후에 귀족이나 자본가의 콜렉션에 대신하여 미술시장이 나타나게 되었고,
그들은 점차 예술가의 실제적인 후원자나 수집가가 되었다. 따라서 예술은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높여가게 되었다. 화가들은 정기적인 전람회를 위하여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하였으며 때에 따라서
신선함과 센세이셔널리즘이 요구되기도 하였다. 19세기말 화가는 대중생활 속의 주제를 선택하든지
아니면 화가로서 자신의 내면 자체에서 주제를 찾아내는 두 가지 중 선택을 강요당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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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ys of Seeing - John Berger
4. 수집가 역할을 담당하는 미술괄
이러한 점은 시각의 의미작용도 변색시켰다. 특정 장소에 모아진 작품을 예술이라고 하는
이미 설정되어 있는 시점에서 바라보게 되었고, 그 예술을 사회적 기능으로서 포착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다. 예술은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인도하였고 교육시키며 향상시키는 수단이
되었고 이러한 계몽정신이 국가적으로 볼 때 유익한 역할을 완수하게 되었다.
미술관은 수집품이 일찍이 그 자체가 지니고 있던 기능에서 벗어나 그 일족이나 일가로서의 고유의
확인수단이나 재산이었던 초상 자체도 작품으로서 성립시켰다.
18세기 말에서부터 비롯된 근대사회 구조에 의하여 예술은 진정한 예술이 되었던 것이다.
-끝-